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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와 역사 - 데리다 철학에 대한 하나의 입문(필로버스 총서2)
저자 : 김민호 ㅣ 출판사 : 에디스코

2024.03.18 ㅣ 144p ㅣ ISBN-13 : 979119834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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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빛나는 철학자이자 가장 난해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
데리다 철학은 역사를 다르게 사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파리8대학 산하 철학의 현대적 논리 연구소에서 데리다 연구로 박사 논문을 쓴 김민호 선생이 역사에 대한 데리다의 사유를 주제로 한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데리다는 회의적 허무주의자, 상대주의자 등으로 오해되어 왔지만, 이 책의 저자는 데리다야말로 역사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철학의 내부에 전격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노력한 철학자라고 평가한다. 데리다의 해체 개념도 역사를 다르게 사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책 『데리다와 역사: 데리다 철학에 대한 하나의 입문』(필로버스총서 2)은 20세기 가장 빛나는 철학자 중 한 명이자 가장 난해한 철학자로 유명한 자크 데리다 사상을 이해하는 최고의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필로버스 총서는 에디스코가 필로버스(www.philoverse.com)와 함께 인문사회 분야 신진 연구자들의 출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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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프롤로그 7

1강 해체, 자연학과 형이상학 사이에서 15

데리다와 역사? 19
인사라는 문제: 우연과 필연 25
역사화: 우연과 필연의 사이 35
해체의 자리 혹은 역사의 자리 40
기호의 자의성에 관한 학”으로서의 그라마톨로지 43

2강 원에크리튀르: 역사쓰기의 원폭력 47

‘두 죽음 사이의 생’으로서의 역사 52
역사 ‘쓰기’의 원폭력: 생에서 다시 죽음으로 58
폭력의 경제로서의 역사 62
역사적 인식? 75
사례의 이중구속 79

3강 “텍스트-바깥은 없다” 혹은 역사-바깥은 없다 87

그라마톨로지에 대한 언어학적 오해 91
그라마톨로지에 대한 그라마톨로지적 해석 110
“사물 자체가 하나의 기호다” 117

에필로그 123
데리다의 삶에 대한 짧은 소묘 140

[본 문]

10쪽
이 책은 물론 데리다의 사유에 대한 입문이다. 그러나 그의 사유 전반에 대한 개괄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 여기서 나는 데리다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역사에 대한, 즉 삶과 죽음에 대한 특정한 직관을 ‘두 죽음 사이의 생’이라는 정식으로 정리하고자 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죽을 수 있는 만큼 이념적으로도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한편에는 생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죽음이 있어서 양자가 단순하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데리다에 따르면 생은 물질적 죽음과 이념적 죽음 모두를 미루는differer, 즉 차연differance시키는 “죽음의 경제”로, 저 죽음들과 시시각각 얽히면서 마치 샌드위치 같은 꼴로 유지되는 것이다.

17쪽
안녕하십니까. 「데리다와 역사: “스스로 철두철미 역사적임을 알고 있는 철학”으로서의 해체」라는 제목으로 강의하게 된 김민호라고 합니다. 오늘이 첫 번째 강연이고, 세 차례의 강연을 통해서 『그라마톨로지De la grammatologie』의 세 개의 구절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강연 전체의 목적은 “텍스트-바깥은 없다”라는 난해한 구절을 다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만 많이 에두르는 형식으로 최대한 쉽게 이해하고자 합니다.

22~23쪽
앞서 말씀드린 대로 데리다는 역사학자와 대체로 사이가 안 좋습니다. “텍스트-바깥은 없다”라는 악명 높은 문장이 그 관계를 집약합니다. 그런데 정작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서 해당 문장을 쓴 직후에 구구절절 해명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루소의 실제 삶을, 즉 실제의 역사를 간과하고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런 건 다 잊혀지고 ‘텍스트-바깥이 없다니 무슨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다 있어?’ 이렇게 논의가 진행되었죠. 데리다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작 데리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가 무엇인지, 역사성이 무엇인지, 바꾸어 말하면 시간이나 시간성이 무엇인지, 혹은 생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지 연구한 학자이거든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그 점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53쪽
바꾸어 말하면 데리다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언제나 이 시간 속에 처해 있는 존재자로서, 역사가 흐르는 중에 있는 존재자로서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데리다가 아주 일찍 발견하는 진리입니다.

54쪽
바꾸어 말하면 철학은 이 역사, 이 존재보다 항상 늦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학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늦음의 형태로 발견합니다. ‘차’이를 지‘연’의 형태로 발견하는 것이죠. 데리다의 용어로 다시 바꾸어 말하면, 철학은 역사에 대해 차연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데리다에게 철학은 영원히 유한한 담화입니다. 결코 역사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죠. 이것이 62년도의 『서설』에서 이미 그러했고, 90년대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도 다시 확인되는 것입니다.

66~67쪽
그런데 데리다는 그럼에도 기호화해야 한다고, 반복 가능한 체계 안에 욱여넣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아무런 의미를 확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상가입니다. 물질과 이념 사이에서 역사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것은 기호화하는 한에서만, 기록하는 한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약간 죽어야 한다는 것이죠. 생생한 것, 생생했던 것을 그냥 날것인 채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 역사가 없습니다. 그냥 지나가 버리죠. 그것을 붙들어서 반복 가능한 기호의 체계 안에 욱여넣는 한에서만 우리가 역사를 역사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데리다는 하는 것입니다. 역사쓰기는 근원적으로 폭력적이지만, 그 폭력의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93쪽
그러니까 데리다가 모든 것을 언어적인 해석의 문제로 끌고 갔다는 주장, 나아가 모든 것을 무의미에 빠뜨리려고 했다는 주장은 데리다가 보기에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데리다는 의미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의미 고유의 장소가 어디인지 식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26~127쪽
만약 삶을 죽음과 떼어낼 수 없다면, 단지 모든 생명이 결국 죽어야 한다는 생물학적 의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이 분리 불가능성은 역사적인 것으로 삶의 과정 전체가 우선 떠난 이들/것들에게 바치는 애도이자 그/것들이 남긴 유품의 상속임을 뜻한다. 데리다가 삶은 곧 삶을 넘어서는 삶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38쪽
데리다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상속받은 전통 안에서 전통을 갱신하고자 한다. 그는 스스로를 전통, 역사, 공동체에 대해 예외적인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 그릇되게도 형이상학의 도살자처럼 취급받곤 하는 데리다는 꾸준히 자신의 작업이 형이상학의 울타리cloture 안에서 이루어짐을 말해왔다. 데리다가 보기에는 마치 자신은 유럽인, 프랑스인, 유대인이 아닌 양 발화하는 것이야말로 책임을 방기하는 짓이다. 유럽은 그에게 속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다.

140쪽
데리다처럼 난해한 사상가의 생애를 간략하게 소묘할 수 있을까? 아니, 더 일반적으로 한 인간의 역사를 요약하는 일이, 거기에서 철학적 본질 같은 무언가를 추출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데리다라는 인물의 역사를 감히 요약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귀착될 것이다. “저는 하나의 언어만을 구사합니다. 그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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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빛나는 철학자이자 가장 난해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
데리다 철학은 역사를 다르게 사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체, 역사를 다르게 사유하기

자크 데리다(1930~2004)는 20세기 가장 빛나는 철학자이자 가장 난해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철학이 난해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오해되어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푸코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데리다 철학은 실제의 삶, 인물, 역사를 간과한다고 평가했다. 데리다의 사유 전체가 언어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데리다는 상대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포스트 모더니스트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데리다를 이런 시선으로 보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데리다와 역사’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김민호 선생은 데리다의 ‘해체’ 개념은 근본적으로 또 다른 역사성을 사고하는 문제였으며 “데리다의 이념적이고 철학적인 여정은 역사성의 곁에서 개시”되었다고 말한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데리다 사상에서 역사 개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책 『데리다와 역사: 데리다 철학에 대한 하나의 입문』은 데리다의 사상에서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데리다의 주요 개념들이 역사, 역사성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데리다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철학이 향하는 지점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데리다에게 역사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데리다는 ‘역사 철학’이 존재하는 곳에 ‘역사’는 없다고 단언한다.

“데리다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신학-시원-목적론”의 시간 속에서 역사는, 즉 생은 고유하고 독특한 펼쳐짐을 망실하고 앞선 현재들의 한낱 필연적 산물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생, 목적지가 정해진 생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김민호, 『데리다와 역사』, 9쪽)

데리다는 역사 철학처럼 역사에 필연적인 목적이 있다는 “존재-신학-시원-목적론”의 역사성을 비판한다. 모든 것이 필연적인 곳에서는 의미가 생겨날 수 없다. 데리다는 역사 철학이 생을 무의미한 상태로 만든다고 보았다. 역사가 필연적인 목적지를 향해 간다면 “생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생은 그저 정해진 목적지로 가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고 이런 이념적 필연성은 물질적 필연성만큼 생의 고유한 풍요로움을 거세한다.
저자에 따르면 데리다는 이런 무의미의 압도적 폭력에 맞서서 의미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철학자이다. 의미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과 부재를 경유해야만, 또 우연성과 우발성을 승인해야만 도출될 수 있다.
데리다는 우연성과 필연성이 교차하면서 사건이 만들어지고 역사가 생산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데리다에게 “역사를 살아간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우발적인 기회를 필연적인 리듬 속에서 소화”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역사는 무질서한 사태(우연)에 질서(필연)를 만드는 일, 기호를 통해 의미를 재단하고 포획하고 절취하는 액자화의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사는 액자화의 운동이고, 액자화에 따라 동일한 사태도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데리다는 역사는 단선적 계열로 쉽게 결정되고 정리될 수 없기 때문에 역사다워진다고 보았다.
기호는 의미를 적재하고 있는 물질이지만, 기호와 의미 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관계도 없다. 기호가 그 자체로 우발성을 체현하는 최소 형태인 것이다.
흔히 우리는 언어가 무의미를 진리로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언어는 의미를 유실할 위험, 무의미에 내맡겨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언어의 역사가 무의미와 진리라는 두 죽음 사이에 있다고, 물질적인 필연성과 이념적인 필연성 양자 모두와 거리를 두고 특정한 우발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소화하려는 노력 속에 역사와 생과 우리 사유의 운동이 있다고 말한다.


에크리튀르의 원폭력
역사쓰기를 통해 비로소 생성되는 역사

기본적으로 선사와 역사를 가르는 기준점인 에크리튀르는 기록하고 기호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호signe란 무엇이죠? 기의가 적재된 기표, 의미가 적재된 기호, 이념이 적재된 물질입니다. 그렇다면 기호작용signification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기호라는 개념의 두 축, 즉 이념과 물질 중 어느 한쪽으로의 환원을 거부하고 그 사이에서 머무는 작용이 됩니다. 이 사이가 곧 의미signification의 장이고 역사의 장이자 삶의 장이라는 이야기를 저번에 말씀드렸죠.
(김민호, 『데리다와 역사』, 56쪽)

기록, 문자, 글쓰기를 뜻하는 에크리튀르는 데리다에게 역사와 철학의 가능 조건이다. 기록은 기호화이다. 기호화는 인용 가능하고 반복 가능한 의미의 단위를 재단하고 절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기호화가 반복 가능한 단위의 생산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를 쓰는 행위가 근원적인 폭력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데리다가 보기에 차이와 반복의 체계 속에 대상을 집어넣는 “원에크리튀르의 제스처”는 고유성에 대한 위협이자 폭력이며, 이는 다른 모든 종류의 폭력에 앞서는 폭력이다. 고유하려면 모든 차이와 무관해야 하고 반복 불가능해야 하는데, 기호의 의미는 차이의 망 속에서 의미를 가지고, 반복 가능한 것으로서 인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고유성을 고유한 채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기호화되고 기록되는 한에서만 역사가 되고, 그래야만 우리가 역사를 역사로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쓰기는 근원적으로 폭력적이지만, 우린 그 폭력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선택, 선별, 여과를 포함한 모든 규정은 폭력이지만, 우리는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선별하고 규정함으로써만 의미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데리다가 무의미와 허무주의에 맞서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역사가 되는 특별한 사건이 따로 있는 것인가. 데리다가 보기에 처음부터 원본적인 사건으로 주어지는 사태는 없다. 의미 있는 사건이 먼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데리다는 기록되고 전승되는 반복 가능성 속에서 비로소 의미가 생성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무언가가 기록된다는 것은 기록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언가를 배제하고, 죽이고, 누락하면서 역사로서 액자화 되어야만 의미가 만들어지고 되새길 만한 무엇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이 사건인지 아닌지는 사건의 시점에서 즉시 결정될 수 없다. 이런 결정 불가능성이 우리가 무언가를 사건으로 생산할 수 있게끔 허락한다.
또 기록의 가능성은 늘 그 기록을 하는 사람의 부재 가능성, 사멸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호와 서명은 서명자가 부재해도 여전히 기호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기호가 가리키는 대상이 부재하더라도 여전히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와 생은 이념적인 죽음과 물질적인 죽음에 저항하는 것, 양자로의 환원에 저항하는 것이다. 즉 역사와 생은 “두 죽음 모두를 미루는 운동, 차연시키는 운동”이다. 마찬가지로 텍스트도 실재적인 대상을 지시하는 활동으로 환원되지 않고, 이념적인 대상을 전사하는 활동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텍스트는 그 사이에서 길을 낸다.


“텍스트-바깥은 없다” 혹은 역사-바깥은 없다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ie’란 ‘그라메gramme’, 즉 서기소, 문자, 기록, 에크리튀르에 관한 학문을 의미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라마톨로지는 일개 언어학이 아니다.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는 “기호의 자의성에 관한 학”이고 “흔적의 비동기성에 관한 학”이다.
그라마톨로지를 언어학으로 환원하는 독해 때문에 데리다의 “텍스트-바깥은 없다”라는 테제는 “언어-바깥은 없다”로 오해받아 왔다. 그러나 데리다는 모든 것이 언어 안에 유폐되어 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여기에 “텍스트-바깥은 없다”라는 악명 높은 테제의 한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텍스트의 운동, 기호의 운동을 관장하고 규제하는 초월적인 심급,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초월적인 기의, 의미, 이념도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월적인 기표도 없습니다. 나아가 기호의 운동은 기호를 발신한 서명자signataire의 의지로도 통제되지 않고 그것을 통해서 가리켜지는 지시체로도 환원되지 않죠. 기호의 운동을 영구적으로 정박시키는 그런 “바깥”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바깥”으로도 환원되지 않고 정박되지 않는 기호 고유의 운동이 있고, 거기에 역사가 있고 우리의 생이 있습니다.
(김민호, 『데리다와 역사』, 56~57쪽)

저자의 말처럼 데리다의 “텍스트-바깥은 없다”는 실제적인 역사를 무시하고 텍스트적인 유희에 집착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텍스트 바깥에 의미가 따로 있어서 텍스트에 의해 재현, 모사,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의미의 유일한 거처라는 말이다. 이는 역사를 쓰는 것은 텍스트를 직조하는 것이고 이 역사를 다스리는 초월적 심급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는 “텍스트-바깥은 없다”는 “역사-바깥은 없다”라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리다에게 말, 기호, 텍스트에 담긴 주권적 주관은 없다. 이는 텍스트는 자의적인 절취, 인용, 반복의 가능성 속에 있고, 의미의 변질 가능성이나 유실 가능성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의미는 변질되고 유실될 수 있기 때문에 개별 주관의 자의적인 해석도 때때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역사에 어떤 필연성도 없다는 얘기다. 역사는 변전하고 생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데리다가 말하고 싶은 새로운 역사성의 의미다.
데리다는 우발성, 우연성, 무상성이야말로 절대적이라고 보았다. 그런 데리다의 사유를 허무주의라고 공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데리다는 존재의 이유,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오히려 존재 자체가 아니라 존재의 부재 가능성에 의해 존립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의미는 이러저러하게 있는 무언가가 이러저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부터, 요컨대 무상성으로부터 피어나는 것이다.
“텍스트-바깥”은 없기 때문에, 즉 텍스트의 전개를 미리 규정하고 보장하는 의미, 목적, 텔로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무의미한 것들 한가운데에서 의미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텍스트-바깥이 애초부터 없다면 우리에게는 무상하고 무의미한 이 세계를 진지하게 살아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다른 바깥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 무상한 세계를 약간 덜 무상하게 만드는 일이 되고, 근본적으로 나사 빠진 이 무논리한 세계에서 약간의 논리를 찾는 일이” 된다.
이렇듯 데리다에게 역사는 생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것이 데리다가 역사를 강조한 이유이고, 『데리다와 역사』를 읽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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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철학과에서 데카르트의 『정념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파리8대학 산하 철학의 현대적 논리 연구소에서 샤를 라몽의 지도 아래 그라마톨로지 이전부터 유령론 너머까지 이어지는 데리다 사유의 전개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데리다의 시원적 사유로서의 『발생의 문제』」, 「리듬 게임, 가장 빈곤해서 가장 자유로운」, 「긍정 부재신학으로서의 자크 데리다의 철학」, 『이야기꾼과 놀이꾼』 (2023, 공저) 등을 썼고, 『비밀의 취향』(2022), 『우편엽서』(공역, 근간)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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