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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재영씨
저자 : 신재영 ㅣ 출판사 : 에쎄

2023.01.20 ㅣ 268p ㅣ ISBN-13 : 979116909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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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문학 > 수필 > 국내수필
“서민들의 삶이란 게 그저
삼양라면을 먹어볼까 너구리를 먹어볼까 하는
작은 선택의 과정이 아닐까?”


어떤 공간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모이고 만나고 쌓여 인간 삶의 단면이 드러난다. 한 세기 전에 박태원이 『천변풍경』에 담아낸 청계천변이 그랬다. 지금은 바로 편의점이 그런 곳 아닐까? 2022년, 편의점 국내 점포 수는 5만 개를 넘어섰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거의 전부, 간편하게 구할 수 있으니 하루에 한 번 이상 편의점을 찾는 이도 있겠다. 어느새 편의점은 우리가 부러 일상이라고 하지도 않을 만큼 일상이 되어 있는 듯하다.

편의점에서 6년 남짓 일한 저자 ‘재영씨’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면면을 놓치지 않고 모아뒀다가 이 책에 담아냈다. 그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 서민들의 희로애락이다. 재영씨는 계산대와 진열대를 오가며 수많은 손님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그의 시선은 자세하고 따뜻해서, 편의점 손님들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 글 속에 실려 있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이렇게까지 생동감이 넘치는 것은 아마 삶을 대하는 재영씨의 자세에 진정성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진정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재영씨 같은 관찰자 없이는 알아보기 힘든 우리네 삶의 반짝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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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들어가는 말

01. 편의점 출근길에서
02. 라면 소년 1
03. 라면 소년 2
04. 라면 소년 3
05. 따발총
06. 이브의 동산
07. 쇄골의 맛
08. 중딩과 신발튀김
09. 에쎄
10. 어떤 서명
11. 고딩 지민
12. 마포갈비 아주머니 1
13. 마포갈비 아주머니 2
14. 엄지손가락 1
15. 엄지손가락 2
16. 고래가 그랬대
17. 사투리 효과
18. 페니점 1
19. 김병장
20. 볼 빨간 아주머니
21. 김병장은 위버맨쉬
22. 딸내미 1
23. 딸내미 2
24. 니모의 미역국
25. 꽃보다 할매
26. 검은 옷, 용녀 1
27. 검은 옷, 용녀 2
28. 검은 옷, 용녀 3
29. 검은 옷, 용녀 4
30. 쏘 스윗
31. 지갑
32. 허리 아픈 엄마
33. 할부지와 포켓몬 빵
34. 삭발한 유덕화
35. 박덕상
36. 제비와 비둘기
37. 방미나
38.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39. 슈퍼맨 1
40. 슈퍼맨 2
41. 슈퍼맨 3
42. 북맨
43. 호빵맨
44. 이웃들
45. ATM기
46. 민원을 받습니다
47. 무서운 이야기
48. 예수와 돌
49. 심플 아저씨
50. 오구오구
51. 오냐오냐
52. 재영씨는 짱구
53. 보물 찾기
54. 봉지라면
55.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56. 경비 아저씨
57. 여자의 마음
58. 형님
59. 사랑하라, 한 번도 돈 없지 않은 것처럼
60. 나와 동료들
61. 천국
62. 페니점 2

나가는 말
추천의 글

[본 문]

(한숨을 푹 쉬더니) 아니 내가요, 집에 10시나 돼야 들어가요. 그래서 결혼을 할 시간이 없어요! 그게 왜 그러냐면요, 학원에 가야 해서 그래요. 학원 끝나고 집에 가면 자전거 타고 아무리 빨리 가려고 해도 10시가 돼버리거든요!_23쪽

애기 엄마는 비닐봉지에 담겨 있던 과자봉지와 함께 그 사골육수를 재영씨를 향해 던졌다. 쇄골 언저리에 부딪혀 떨어진 사골육수를 바닥에서 집어 다시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 재영씨는 폐기 처리한 사골육수가 버리기 아까워 그것으로 떡국을 끓였다. 떡을 넣고 나니 잠시 후 부글부글 끓기 시작해 간을 봤다. 떡국 육수에서 쇄골 맛이 났다._35~36쪽

여그? 페니점! 자네 페니점 모른당가?_78쪽

낙엽 지던 늦가을 김 병장이 나타났다. 아파트 입구를 중심으로 북위 37도 14분 22초, 동경 131도 52분 08초, 재영씨의 동남향 130미터 2시 방향이었다. 목에는 컬러 좌표 2.5GY 3/4, K값 #53634 그러니까 국방색 수건을 칭칭동여매고 지리산 샘물 수통을 쥔 채로. 한파가 닥친 한겨울에도 깔깔이에 인민군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김 병장은 밖으로 나왔다._85쪽

이분은 이모를 ‘니모’라고 부르는 생선구이 전문점 주방 왕언니다. ‘니모’라고 하니 르네 마그리트의 「어인공주」 (원제 ‘집단적 발명’)가 떠올랐다. 그래서 재영씨는 이 왕언니를 디즈니 「인어공주」의 바다 마녀 ‘어설러’라 부르기로 했다._110쪽

재영씨는 그들이 화장실의 ‘뚫어뻥’을 찾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흔히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하듯이. 그러나 안타깝게도 편의점에서는 그 도구를 팔지 않는다. 그래서 정 급하면 페트병을 잘라서 도구로 활용하고, 압력을 이용해보라고 방법을 알려주면 그들은 곧잘 감격했다. 감격의 반응도 다양하다. 가령 어눌한 한국말로 캄사합니타, 그이들 나라 말로 감사합니다, 공손히 합장을 하거나, 때로는 눈을 바르르 떨며 윙크하기도 한다._172쪽

이윽고 아저씨는 어깨가 넓대대한 두 경찰에 의해 편의점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 야 잇년아! 심플 한 갑 줘! 잉?_218쪽

편의점에서 쪽팔리지 않아도 되고 여기저기 좋은 데서 데이트도 하고 청첩장도 돌리고 불안에 떨며 임신 테스트기를 사지 않아도 되는, 우리 20대들이 사랑 뿜뿜하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껏 사랑하지도 못하게 하는 세상이 진짜 쪽팔린 거라고 재영씨는 생각했다._249쪽

사람들은 자신의 물건을 찾으러 온 듯 들어와서는 무엇인가 비닐봉지에 담아가지만 그 짧은 순간에 몇 마디의 말과 표정으로 그들의 감정을 흘리고 간다. 때론 그것이 반복되어 서로에게 인식되고 이렇게 이야기가 쌓여가곤 했다. 재영씨는 여기서 그것들을 주워 담았을 뿐이다. 짬이 날 때마다 계산대 구석에 앉아 휴대폰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썼던 것들이 이렇게 7만 자가 넘는 글이 되었다. 세월이 글을 써주었다._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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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편의점 손님들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각자의 색깔이 선명하다. 첫 등장인물인 ‘라면 소년’은 학원 때문에 도대체 결혼할 시간이 없다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어떤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은 재영씨를 ‘재영띠’라 부르며 손님들에게 재영씨가 자기네 엄마라고 장난을 치고, 개구리 군복을 입고 매일 담배를 두 갑씩 사는 다섯 아이의 이모(!) ‘김 병장’은 특유의 군인 같은 말투와 행동으로 뭇사람들의 눈길을 잡아챈다. 김 병장이 여자라는 사실에 기함했던 ‘볼 빨간 아주머니’는 언제부턴가 그의 러닝메이트가 됐다. 편의점의 ‘꽃보다 할매’ 3인방은 올 때마다 재영씨와 시트콤처럼 톡톡 튀는 대화를 나누며, 미역이나 잡채나 떡을 가져다준다. 그중 흑룡강에서 온 ‘용녀’ 할머니의 카리스마는 책을 덮고도 한참 뇌리에 남는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재영씨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다. 무슨 담배를 좋아하는지, 무슨 술을 좋아하는지, 어느 크기 봉지를 선호하는지 등을 알아두는 것은 기본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특징을 잡아내 ‘어설러’ ‘일용엄니’ ‘호빵맨’ ‘참새와 할미꽃’ 같은 별명을 붙여준 것도 이 책의 묘한 매력이다. 재영씨의 관심과 애정은 별명에서 그치지 않고, 스마트폰에 쩔쩔매는 것을 도와주거나 억울한 일 하소연을 들어주는 등 점원과 손님 이상의 관계를 맺는 데까지 나아간다. 심지어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가 세금 신고 때문에 난감해하는 것을 보고 그의 회사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계산대에 가만 앉아 눈을 반짝이며 진열대 사이의 손님들을 바라보는 재영씨의 모습이 그려진다. 손님 한 명 한 명이 저도 모르게 품고 있는 빛깔을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리라. 별별 일을 다 도와주는 것도 단순한 직업정신의 발로라기보다, 그 빛깔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맺다보니 어느샌가 마음을 열게 되어서가 아닐까.

계산대에서 만난 달콤한 이야기, 씁쓸한 사연들
편의점은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와 속사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만화경이기도 하다. 재영씨는 때로는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대화의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사연을 조심스레 짐작하기도 한다. 이따금 담배를 사러 오는 택배원이 사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담배 셔틀’이었다거나, 재영씨를 졸졸 따라다니며 밝은 모습만 보이던 열두 살짜리 소녀가 알고 보니 오빠에게 손찌검을 당하고 있었다거나, 매일 술을 먹어 건강이 나빠진 아저씨가 결국 고향에 가자마자 세상을 떠났다거나 하는 등, 편의점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연들이 흘러들어온다.
재영씨가 직접 겪은 일들도 편의점 이야기에 구체성을 더해준다. 특히 ‘진상’ 손님 이야기는 더없이 사실적이고 자세해서 직접 계산대에 서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만취한 채로 ‘요즘 것들은’ 레퍼토리를 늘어놓다가 경찰에게 끌려나가며 ‘담배 한 갑 줘!’라고 외치는 아저씨는 귀엽기라도 하다. 유통기한이 지났다며 재영씨에게 상품을 집어던지는 손님도 있고, 보자마자 하대하고 욕설을 뱉는 전형적인 ‘갑질’ 손님도 있다. 돌연 망치를 들고 들어온 사람 때문에 경찰을 부른 일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할 사람을 만나 편의점에 데리고 온 단골 청년, 손주를 위해 포켓몬 빵을 찾는 멋진 할아버지, 남편과 사별하고 슬피 울다가도 생전에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다며 재영씨를 붙들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처럼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갖고 오는 사람도 많다. 더군다나 ‘60대 되면 진짜 귀가 순해져요?’라는 말에 ‘40이 되어보니 유혹에 안 흔들리디?’라고 받아치는 손님을 보고 있자면, 웃음을 연발하는 이 시트콤 연속극에 재영씨와 함께 등장인물로 출연하고 싶어진다.

편의점에서 우리는 모두 ‘한통속’

“사람들은 자신의 물건을 찾으러 온 듯 들어와서는 무엇인가 비닐봉지에 담아가지만 그 짧은 순간에 몇 마디의 말과 표정으로 그들의 감정을 흘리고 간다. 때론 그것이 반복되어 서로에게 인식되고 이렇게 이야기가 쌓여가곤 했다.”_261쪽

이 책을 읽다보면 편의점이라는 공간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편의점에는 예기치 못한 마주침, 기대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가득하다. 재영씨는 손님들이 저도 모르게 흘리고 가는 감정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끌어모은다. 그 과정에서 손님들은 그저 잠깐 다녀가는 타인이 아닌, 저마다의 리듬으로 살아 숨쉬는 생생한 실체가 된다. 거기서 관계가 발생하고, 세상은 좀더 다양한 색깔로 그 숨겨진 모습을 드러낸다.
재영씨는 편의점을 찾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모두 한통속’이라 말한다. ‘이웃’이라는 뜻이라면서. 우리는 사실 ‘한통속’인 서로를 너무도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게 아닐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이 책을 덮고 나면 편의점에서 스쳐 지나는 타인들이 그저 타인으로만 보이지 않게 된다.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다채로운 마음을, 우리는 좀더 반짝이는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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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영
탕탕절이 있던 해에 태어났다. 성적에 맞추다보니 서울여대 아동학과를 졸업했다. 여자들만 모여 있으니 재미가 없었다. 웅진닷컴 교육팀 강사가 되었다. 코미디 관련 업계가 더 적성에 맞아 보인다는 권유를 받고 사직했다. 백수(01)를 거쳐 사람커뮤니케이션사에 입사, 사람은 못 보고 커뮤니케이션만 잔뜩 하고 쫑! 다시 백수(02). 17대 대선 정동영 후보 대선선대본부에서 일했다. 대장 낙선 또 백수(03). 18대 정동영 후보 동작을 총선선대본부에 합류, 대장 낙선 자동 백수(04). 18대 이상경 의원 강동을 총선선대본부 합류, 대장 공천 탈락, 말하나마나 백수(05). 차형근 변호사 비서, 세상을 떠나시고 돌백(06). 국민연금관리공단 본부 사업자 상담직, 사장님들 엄청 상담해주다가 백수(07), 동화세상에듀코 입사, 학부모님들과 열렬히 상담하다가 백수(08). 이태원에 있는 CU편의점 알바로 ‘편의점 재영씨’의 시작. 천안에 있는 GS편의점 알바로 ‘편의점 재영씨’ 휴대폰에 막 글질. 그러나 다시 백수(09). 암튼 과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지금은 집에서 놀고 있음! 미래에는…… 글을 계속 쓰는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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