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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썹 같은 봉우리 아름다운 남산
저자 : 윤도준 ㅣ 출판사 : 일조각

2022.09.15 ㅣ 224p ㅣ ISBN-13 : 9788933708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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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인문 > 한국역사/지리 > 역사일반/교양/역사...
우리 곁에 있는 남산을 둘러보다

《푸른 눈썹 같은 봉우리, 아름다운 남산》은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약 6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산이 겪었던 변화를 시대순으로 면밀하게 살펴본 ‘에세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학자도 아니고, 여행가도 아니다. 그러나 남산을 향한 마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동화약품 회장 윤도준은 10년이 넘도록 남산을 거의 매일 찾았고 2017년부터는 남산 탐방을 기획할 만큼 이곳에 애정이 많다. 그 애정을 원천으로 남산에 얽힌 어두운 역사를 하나둘씩 찾아보고 알게 된 것을 살뜰히 정리하였고, 실제 탐방을 할 때처럼 독자에게 직접 들려주듯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간다. 과거 남산에 있던 시설이나 건축물이 어떤 이유로 지어졌는지, 또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그 변천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당대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외에도 현재 남산에 있는 시설물과 도로를 표시한 지도, 시설물과 권역의 변천을 정리한 연대표를 수록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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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서문
들어가며

0 남산 역사 탐방의 시작

1 조선 시대의 목멱산
신성한 그 이름, 목멱산이어라
북촌과 남촌
한양을 지키는 아름다운 산

2 대한제국 시대의 남산
남산 자락을 잠식한 일제
저물어 가는 조선 왕조

3 일제 강점기의 남산
남산 자락 곳곳에 자리 잡은 침략의 흔적
남산의 공원화: 파괴하고 파괴되는 것
도로, 남산에 들어서다

4 광복 후의 남산
정권 따라 변하는 남산 풍경
떠오르다 사라진 이승만의 자리

5 군사정권 시대의 남산
민심을 통합하는 법
남산에 부는 개발의 바람
조금씩 회복해 나가다

6 오늘날의 남산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
남산 도로 변천사
또다시 사라지는 역사적 발자취와 아쉬움
역사를 기억하는 법
모든 이에게 소중한 남산이 되는 날까지

나가며
도움 받은 자료
도판 일람

[본 문]

이 책이 남산이라는 공간이 담고 있는 남산의 역사와 그 맥락을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여정 속에서 나 자신, 그리고 우리 사회 앞에 놓여 있는 여러 문제들을 비추어 본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역사는 멈춰진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살아 숨쉬고 있으니까요.
질곡의 세월을 견뎌 낸 남산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한 번쯤은 귀를 기울여 봤으면 합니다. 책을 통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뜨거운 울림으로, 혹은 깨달음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연대하며, 우리 사회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합니다.

-19쪽, 들어가며


이렇게 일본은 남산에 신사, 통감부, 헌병대 같은 식민통치를 위한 시설을 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랜 세월 한양을 풍수지리적으로 지켜준 이 신성한 산을 차지해서 한국인의 기세를 한풀 꺾겠다,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마음을 품어서 그런 건지, 일제는 남산을 원래 자신들의 구역인 양 잠식해 들어갔어요. 이미 이 동네에 살던 일본 사람들을 위한 왜성대공원(1897)이 있었음에도 또다시 회현동 일대를 영구대여 형식으로 차지해서 한양공원(1910)을 만듭니다. 이 한양공원의 표지석은 고종에게 써달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고종 임금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감히 상상이 가질 않아요. 공원 터는 지금까지도 흔적이 남아 있는데, 표지석 뒷면은 누가 꼴 보기 싫었는지 글씨를 정으로 까 버렸어요. 이처럼 조선의 ‘남촌’은 일제의 본거지로 탈바꿈하여 각종 식민통치 기구와 일본식 종교기관의 집합처가 되어버렸습니다.
-62~63쪽, 대한제국 시대의 남산 〈저물어 가는 조선 왕조〉


1898년, 한성에 있던 일본거류민단은 일본의 이세신궁에 모셔진 신체(神體) 일부를 가지고 와서 남산 왜성대에 남산대신궁을 창건합니다. 이로부터 17년이 지나 1915년에 정식 신사가 되면서 경성신사로 개칭하게 되죠. 이 경성신사가 국폐소사로 격상되는 건 1936년, 무려 20여 년이 지나고 나서입니다.
그리고 3·1 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신궁 창립을 공표합니다. 처음에는 조선신궁이 아니라 조선신사로 계획을 하고 짓기 시작했다고 해요. 공사 중에 신사에서 신궁으로 격상된 거죠. 1920년에 본격적으로 건설에 착수하여 5년 만인 1925년에 완공해요. 조선신궁하고 경성신사하고는 무척 가깝습니다. 걸어서 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거대한 신사를 또 지은 거죠. 약 13만 평(42.3만m2)의 부지에 조선신궁을 위한 수백 개의 돌계단과 건물들이 들어섭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남산의 경사면을 따라 이어지던 한양 도성이, 특히 회현 자락 쪽의 성벽이 크게 훼손됐어요. 일제는 숭례문에서 조선신궁 앞까지 참배객의 편의를 위해 성곽을 허물고 찻길을 낸 거죠. 이곳은 지금의 소월길의 모태이기도 합니다. 사실 남산에 있는 도로들은 거의 다 그때 난 거예요.

-78쪽, 일제 강점기의 남산 〈남산자락 곳곳에 자리 잡은 침략의 흔적〉


고고한 위용을 자랑하던 저 남산의 소나무가 대대적으로 벌목된 것은 바로 일제에 의해서예요. 일제는 남산 일대에 자신들의 공공시설을 지으면서 소나무를 벌채하였고, 특히 조선신궁을 짓기 위해서 13만 평에 달하는 남산 중턱과 정상부 일대의 수목을 베어냈죠. 1930년대에도 철도 부설 등을 이유로 질 좋은 남산 소나무를 마구 베었어요.
이로써 남산은 제 모습을 잃었고 생태계는 파괴되었습니다. 게다가 해방과 6·25 전쟁 뒤 복원은커녕 각종 건물과 시설들이 줄줄이 들어서는 바람에 훼손은 더욱 가속화되었죠. 특히 살길을 찾아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은 남산의 소나무를 거의 남김없이 잘라냈어요. 반듯한 나무는 집을 지을 목재로, 자잘한 솔가지는 땔감으로 베어져 남산은 거의 민둥산이 되다시피 했답니다.

-102쪽, 일제 강점기의 남산 〈남산의 공원화: 파괴하고 파괴되는 것〉


조선 시대에는 왕권의 신성함을 알리는 장소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번영과 위세를 뽐냈으며, 광복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위업을 과시하는 무대가 되었던 남산은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 성장과 정치적 기능이 집약된 요충지가 됩니다. 위정자들이 권력을 과시하고, 명분을 세우며 정권을 수호하기 위한 공간으로 쓰인 거죠. 특히 1961년에 중앙정보부가 세워지고, 1964년에 반공교육의 본산지가 된 자유센터가 들어서면서 남산은 보다 딱딱한 장소로 변합니다. 그 상징적인 이미지를 제목에 담은 〈남산의 부장들〉(2020)이라는 영화도 나왔지요.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예전에 남산이 이렇게나 정치적으로 강압적인 이미지를 띤 장소였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한때 ‘남산으로 끌려가고 싶으냐’라는 은어가 종종 쓰였으니까요.
한편으로 이곳에는 정부의 경제발전 계획에 따라 외국자본 유치와 기술 이전을 위한 외국인들의 전용 공간이 들어섰고, 정부가 앞장서서 규제를 완화하면서 개발사업들을 유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경유착도 있었고요. 남산에는 재벌기업들의 고급 호텔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그 주변 땅들은 계속 무분별하게 훼손되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30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남산을 차지했던 기관들과 유명한 장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되살아나고 파괴되었을까요?

-134~135쪽, 군사정권 시대의 남산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제가 남산 지역을 그들의 본거지로 점거한 것은 그 당시 남산 기슭에 사람이 살지 않고 국유지인지라 대한제국 정부의 허가만 얻으면 점유가 가능했고, 일본인 집단 거류지가 가까운 이점도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해방 후엔 우리나라의 형편이 열악한데 일본인들이 떠난 남산 지역에 시설은 그대로 있었으니 사용했던 것이고, 6·25 전쟁 후에는 불타 버린 빈 땅에 급한 대로 필요한 시설들을 지어 이용했겠지요. 해방과 전쟁으로 갑작스레 월남민 등이 몰려들어 해방촌도 생기고, 역사적 의미를 따질 겨를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국가안전기획부가 남산에서 나갈 무렵은 대한민국의 형편이 조금은 좋아졌을 때인데 그 시점에도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 하나를 제대로 만들 생각을 안 했다는 점은 무척 아쉽습니다.
저는 역사 교육의 교훈이 될 만하게 ‘홀로코스트 코리안 버전(Holocaust Korean Version)’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가 유대인 대량 학살하던 것을 뜻하는데 이것을 기억하기 위한 기억공간이 전세계44개국에 351개나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월드센터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어요. 이름이 ‘야드바쉠’이에요. 이스라엘 말로 ‘잊지 말자’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홀로코스트 기억공간에 필적할 만한 것, 홀로코스트 코리안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것을 아직 만들지 못한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4쪽, 오늘날의 남산 〈모든 이에게 소중한 남산이 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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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남산’이라 하면 무슨 생각이 날까? 남산타워, 케이블카, 야외식물원, 중앙정보부, 외인아파트, 터널…. 이처럼 ‘남산’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많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더 많다. 어느 순간부터 남산은 서울을 상징하는 ‘명소’가 되었다. 과거 서울 구경을 하러 온 시골 사람들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남산타워를 꼽았던 것처럼, 이제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인정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의 남산이 되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그 이름 목멱산이어라

조선 시대에 ‘목멱산木覓山’이라고 불리던 남산은 그 경관이 아름다웠다. 조선 정조 때 글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문신 이덕무가 어명을 받고 다른 신하들과 함께 지은 한양의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 중 남산을 묘사한 구절만 봐도 그 당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남쪽 산은 자각봉처럼 빼어난 곳이 없는데, 푸른 눈썹 같은 봉우리 높이 솟아 하늘도 지척이라네.”

푸른 눈썹 같은 봉우리라니, 얼마나 미려한 표현인가. 여기서 자각(紫閣)은 신선이나 은자가 사는 곳을 가리키는데, 한양의 남산이 빼족하거나 장중한 바위산이 아니라 유려하고 아름다운 토산임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이덕무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문신이면서 특히 그림이 뛰어났던 강세황 역시 남산에 대해 특별한 마음이 있었다. 남산 기슭의 남소동에서 태어난 그는 벼슬을 하던 중 스승 이익을 따라 경기도 안산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겼다. 그러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어쩌지 못해서 <남산과 삼각산>이란 그림에 “교외에 산 지 이미 오래지만, 그럴수록 한양이 그리워서, 남산과 삼각산을 때때로 집 뒤 언덕에 올라 바라본다네”라고 한 수 써넣었다. 이처럼 조선의 수도 한양을 보호하던 내사산(內四山) 중 하나이자 봉수대를 설치하여 팔도에서 오는 소식을 접수하는 통신수비대였던 남산은 본연의 아름다움 때문에 여러 사람의 찬사를 받았다.

고요하던 남산의 평화가 깨지다

그러나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조선이 문호개방을 하게 되면서 남산에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개항 후 한양에서 자신들의 거점을 넓히려 했던 일본은 거류민이 많이 살고 있는 진고개와 가깝고 터가 좋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술수를 부리면서 남산을 꾸준히, 그리고 집요하게 잠식해 갔다. 통감부, 총독부, 신사, 신궁 등 주요행정기관과 종교시설을 곳곳에 세웠고 합방 후에는 기존에 조선이 세웠던 시설물을 없애거나 용도변경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최초의 국립묘지였던 장충단을 한일합방이 되자마자 폐사하고 공원화한 다음 한일합방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딴 ‘박문사’라는 사찰을 세운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해방 후에도 남산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가 남기고 간 시설을 전용했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불타버린 자리에는 여러 권력기관이 다시 들어섰다. 그 밖에도 전쟁 후 살 곳을 찾아 몰려드는 피난민에게 점유되고, 정권에 따라 권력의 상징물이 들어서거나 경제 개발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훼손되는 사태도 벌어지면서 남산은 점점 망가져 갔다. 다행히 50여 년 전에 시작된 산림녹화사업을 시작으로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이 지속되었고, 그 결과 남산은 이제 서울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관광지이자 휴식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옛 남산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남산의 현재 모습에 조금 아쉬워한다. 지금의 남산이 보기 좋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근사한 모습은 마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만인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하기보다는 아픈 역사를 덜 드러내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남산을 우직하게 좇다

이쯤 해서 우리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일본은 왜 하필 하고많은 한양의 산 중에서 남산을 노렸을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게 된 효과는 무엇이고, 이는 후일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앞으로 우리는 남산을 보고 어떤 미래를 떠올릴 수 있을까?
《푸른 눈썹 같은 봉우리, 아름다운 남산》의 저자 동화약품 회장 윤도준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오랜 세월 공부한 역사학자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여행 작가도 아니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산을 가까이하고 지냈고, 노년이 된 지금 하루하루 더 열심히 남산을 오를 따름이다. 다만 거의 매일같이 가는데도 남산이 새롭게 느껴진다는 그는 오랜 세월 숱한 시련과 변화를 겪었던 남산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과감하게 남산 탐방을 기획하고, 실제로 몇 년 동안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코로나19로 탐방을 중단한 이후에는 그동안 찾아보고 모아 두었던 자료에 더해 새롭게 알게 된 지식 등을 정리하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과거의 남산, 현재의 남산,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기대하는 남산의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저자의 서술은 읽는 이들에게 남산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알려 주고, 미래의 남산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늘도 남산을 보며 가슴에 뜻을 품는다

역사를 이야기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차분하고 냉정하거나, 쉽게 흥분하고 뜨겁거나. 저자는 후자에 속한다. 때로는 남산의 역사를 설명하던 중 암울했던 부분을 이야기하다가 울분에 가득 차기도 하고, 관광지 개발에만 역점을 둔 탓에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관리가 소홀하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하며, 현실적으로 바로 이뤄지기 어려운 남산의 보전계획안을 과감하게 제안하기도 한다. 동시에 사람은 자신이 자라온 곳의 역사, 즉 뿌리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신조를 설파하면서, 아주 오래전부터 보고 살아온 남산이 잘 보존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산의 관리나 역사 알리기가 좀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희망을 논한다. 푸르른 남산이 결국 우리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 조금이라도 뿌리를 내리고, 그 산을 마음에 품은 젊은이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약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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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및 대학원 의학과(의학박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부속병원 정신과 과장 역임.
현재 동화약품 회장, 가송재단 이사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남산을 좋아한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긴 세월 동안 남산 자락을 가까이했고 지난 10여 년간 매일같이 남산을 오르고 있다. 날마다 남산을 보다가 2017년부터는 사람들을 모아 남산 역사 탐방을 시작했다. 탐방을 통해 그간 미처 알지 못했던 깊은 역사가 남산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차츰차츰 공부해 나가면서 얻은 자료와 지식을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워 책이라는 형태로 남기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한테 남산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널리 알리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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