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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레이(아우또노미아총서78)
저자 : 마커스레디커 ㅣ 출판사 : 갈무리 ㅣ 역자 : 박지순

2021.12.27 ㅣ 304p ㅣ ISBN-13 : 9788961952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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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A5(210mm X 148mm, 국판)
제품구성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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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인문 > 세계역사/지리 > 세계사/세계문화사/...
『벤저민 레이』는 대서양 노예무역상들의 해상 대학살을 고발한 최초의 인물로서, 계급의식, 인종의식, 성별의식, 환경의식을 통합한 혁명적인 세계관을 가진 ‘벤저민 레이’의 일대기이다. 벤저민 레이는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인간을 속박하는 일이 하늘에 태양과 별 그리고 달이 뜨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영원하다고 생각했던 시대에, 노예제가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 그는 시대를 훨씬 앞선 사람이었다. 벤저민 레이는 17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노예제 반대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2세대의 시기를 앞서서 노예제에 대한 비판을 형성했다. 노예제에 반대하는 맹렬하고도 논쟁적인 내용을 담은 『무고한 이를 속박해두는 모든 노예 소유자, 배교자들』을 썼고 이 책은 벤저민 프랭클린이 1738년에 출판했다. 벤저민 레이는 사람을 노예로 속박하는 일은 기독교의 근본 원리를 위반한다고 주장하였고, 대중 앞에서 붉은 미국자리공 열매의 즙으로 가득 찬 동물 방광 주머니를 칼로 찔러 “주님께서는 동포를 노예로 삼은 자들이 피를 흘리게 하리라.”고 외치는 게릴라 연극을 펼쳤다.
벤저민 레이는 동굴에 살며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억압된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생산한 어떠한 상품도 소비하기를 거부하였다. 농장 생산의 엄청난 폭력성에 관해 어느 누구도 사회운동을 벌이고 있지 않았던 시기에 벤저민은 이미 “설탕이 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동물의 권리를 옹호했으며 ‘비건’이라는 말이 세상에 등장하기 200여 년 전에 이미 채식주의를 실천했다. 그는 인간이나 동물 착취가 필요하지 않은 “지상의 무해한 양식”인 땅에서 나는 채소와 열매를 주로 먹고살면서, 자신의 이상에 따라 행동하며 새롭고 실용적이며 혁명적인 삶의 방식을 창출했다. 벤저민 레이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믿었고, 실제로 예배 중에 성별에 따른 인위적인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성 신도의 구역에 앉으면서 퀘이커의 성별 위계를 파괴하였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이 독학 철학자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디오게네스를 읽었고, “이득을 취하기 위해 세상을 더럽히는” 부자와 권력자들에 맞서 용감하게 진실을 말하는 파레시아(parrhesia)를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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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19

서론 : 반노예제 선각자 24

1장 초기 생애 38
코퍼드 : 평민[공통인] 39
퀘이커교도 45
포덤 : 양치기 52
콜체스터 : 장갑 제조공 54
런던 : 선원 56

2장 “싸움꾼 투쟁가” 65
런던, 1714년~1718년 66
바베이도스, 1718년~1720년 71
런던, 1720년~1722년 76
콜체스터, 1722년~1726년 78
콜체스터, 1729년~1732년 90

3장 필라델피아의 “유명인들” 96
공동체 100
되돌아본 노예제 105
샌디퍼드 찾기 108
“대죄” 112
게릴라 연극 115
자격 논쟁 118
사라의 죽음 121
되돌아온 싸움꾼 123

4장 배교자가 된 노예 소유자들 129
기원 132
움직임 140
예언 152

5장 책과 새로운 삶 165
율법 폐기론 168
견유 철학 174
언론의 자유 183
행복에 이르는 길 188
땅으로 돌아가기 194
새 예루살렘 197

6장 죽음, 기억, 영향 200
힘을 잃은 선지자 207
“유명인들”과 다시 한번 맞붙다 218
영향 222

결론 : 커다란 오크나무 232

지은이의 말 246
감사의 말 249
약어표 253
날짜에 관한 알림 255
옮긴이 후기 256
후주 259
인명 찾아보기 292
용어 찾아보기 296
도판 출처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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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사상가, 벤저민 레이
이 책 『벤저민 레이』에서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마커스 레디커가 18세기의 퀘이커교도 벤저민 레이(1682~1759)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양치기로 일했던 벤저민 레이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저민 레이는 전 세계적으로 노예제 폐지를 최초로 요구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으며, 노예제 폐지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책 『무고한 이를 속박해두는 모든 노예 소유자, 배교자들』을 썼고 이 책은 벤저민 프랭클린이 1738년에 출판했다. 레디커는 레이가 선원으로 일하면서 뱃동지들로부터 선상에서 읽고 쓰는 법을 배웠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레이의 책과 삶의 궤적을 좇으며 저자가 발견한 것은 신장 120cm의 작은 거인 벤저민 레이가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였다는 점이다. 그는 1968년 혁명에서 비로소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여겨져온 다양한 사회적 쟁점들에 관해서 이미 18세기에 종합적으로 사고한 인물이었다. 레디커는 이에 대해서 레이가 “교차성”을 담지하고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표현을 쓴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벤저민 레이는 선원 생활, 그리고 바베이도스의 설탕 농장들에서 자신이 목격한 노예제의 참혹한 현실을 바탕으로 인종 문제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노예제의 즉시 폐지를 주장했다. 벤저민 레이는 계급 불평등을 비판했고 가난한 사람들이 주린 배를 움켜쥘 때 자기 배를 채우고 ‘이익을 위해 땅에 독약을 푸는’ 부자와 권력자들의 탐욕을 공격했다. 벤저민 레이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퀘이커교 집회의 성별 좌석 구분을 흐트러트리며 거리낌 없이 여성 신도들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는 동물권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동물을 인류의 ‘동포’(fellow creatures)로 여겼다. 그는 사람들이 동물을 죽이면 결국 서로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피타고라스에 동의하면서 비건이라는 말이 탄생하기 200여 년 전에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벤저민 레이는 생태와 환경 문제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동굴에 살며 스스로 먹을 음식을 재배했다. 그는 현대의 소비자 불매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벤저민 레이는 설탕이 아프리카인 노예들의 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 어떤 상품의 소비도 거부하면서 설탕을 불매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벤저민 레이는 담배도 사지 않았고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지어 입었다. 자본주의라는 말이 아직 탄생하기 전 시기에 벤저민 레이는 상품 시장을 비판했고 그러한 사상을 노예제에 반대하는 투쟁에 적용했다.
실제로 그의 신념과 요구 그리고 저항은 퀘이커교가 내부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한 최초의 집단이 될 수 있게 이끌었다. 퀘이커교에서는 1776년에 노예를 소유한 사람은 퀘이커교도가 될 수 없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18세기 초부터 지속한 레이의 반노예제 투쟁이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벤저민 레이의 이름은 한국은 물론 영국과 미국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는 오히려 노예를 소유하며 그들로부터 이익을 취한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인물을 “위인”으로 기록하면서, 누구보다 앞서서 혁명적 변화를 요구했던 벤저민 레이는 기억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레디커는 벤저민 레이의 귀환을 요구하고 있다. 마커스 레디커에 따르면 벤저민 레이의 사상은 마키아벨리, 스피노자, 홉스, 그리고 특히 ‘계몽된’ 노예 소유주인 토머스 제퍼슨의 사상과 함께 연구할 가치가 있다.

벤저민 레이의 게릴라 연극
1738년 9월 19일, 뉴저지 벌링턴의 퀘이커교 예배당으로 벤저민 레이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레이는 속이 텅 비어 있어서 물건을 숨길 수 있게 되어 있는 한 권의 책을 품속에 지니고 있었다. 책 속에는 미국자리공 열매의 붉은 즙을 담은 동물 방광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퀘이커교도들의 예배 분위기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공식적으로 목사도 교회 의식도 없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영혼이 동하면 발언을 하곤 했다. 벤저민 레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저지의 유력한 퀘이커교도들은 대서양 상거래로 돈을 벌었고 이들 중 다수는 노예 소유자들이었다. 벤저민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노예를 소유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다!” 예언자처럼 메시지를 전한 벤저민은 코트를 벗어 던지며 숨겨온 칼과 책을 꺼냈고 그의 전투복 차림이 드러났다. 퀘이커교도들은 1660년 이래로 모든 무기와 전쟁을 거부하는 “평화선서”를 받아들였기에 벤저민 레이의 전투 복장만으로도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예배당의 퀘이커교도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벤저민 레이의 퍼포먼스는 절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동포를 노예로 삼은 자들이 피를 흘리게 하리라!” 벤저민 레이는 칼을 뽑았고, 책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책 사이로 칼을 찔러 넣었다. 붉은 액체가 콸콸 벤저민 레이의 팔 위로 흘러내렸다. 예배당은 혼돈에 휩싸였다. 기록에 따르면 신도들에게 피를 흩뿌린 벤저민은 “동상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머지않아 몇 명의 퀘이커교도들이 120센티미터의 벤저민 레이를 들쳐 매고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이는 필라델피아, 벌링턴, 콘코드 등 셀 수 없이 많은 퀘이커 모임에서 벤저민 레이가 벌인 게릴라 연극 퍼포먼스 중 하나였다. 노예 소유자들을 공격하는 소동을 일으키기로 악명이 높았던 벤저민 레이는 언젠가부터는 퀘이커 모임에 나타나 앉아있기만 해도 쫓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벤저민 레이는 비 오는 날에 거리로 내던져진 후에도 예배당 정문의 진흙 바닥에 누워 모임을 떠나려는 자는 누구든 자기를 밟고 가라고 요구할 만큼 완고했다. 벤저민 레이는 노예제의 즉시 폐지를 위해 몸을 던진 활동가이자 예술가였고, 모든 아프리카인 노예들이 해방될 때까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벤저민 레이가 역사에서 배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벤저민 레이의 사상과 생애는 비범하다. 레디커의 말처럼 그가 시대를 2~300년 앞서간 사상가였음에도 합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커스 레디커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벤저민 레이의 서사가 노예제 폐지에 대한 주류 역사서술의 “하향식” 관점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유명한 폐지론자처럼 “신사 성자”가 아니었고 적절한 교육을 받지도, “계몽”되지도 않았다. 그는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평범한 노동자였고 선원이었으며 양치기, 장갑 제조공, 서적상 같은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그렇지만 벤저민 레이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역사서술이 잘못되었거나 적어도 반쪽짜리 그림이라는 것이다. 레디커에 따르면 벤저민의 시대에 교육받고, 계몽되고, 학식 있는 점잖은 사람들은 주로 노예제를 지지했고,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노예 주인이기도 했다. 반면에 17세기와 18세기에 가장 먼저 책을 출판한 노예제 비평가들은 거의 모두가 변변찮은 출신의 노동자들이었다. 벤저민 레이가 그러했고, 그 밖에도 조지 폭스는 신발 제작자의 도제였고, 토머스 트라이온은 양을 치고 모자를 만들었으며, 윌리엄 에드먼드슨과 엘리후 콜먼은 목수였다. 존 헵번은 계약하인으로 뉴저지에 왔고, 윌리엄 사우스비는 배를 건조했으며, 랠프 샌디퍼드는 대해를 항해했고 존 울먼은 천을 재단했다. 이들의 평범하고 고된 노동 생활이 노예들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제 폐지운동은 중간계급에 국한된 운동이 아니었다고 마커스 레디커는 쓴다.
두 번째 이유는 벤저민 레이를 “뒤틀린” 인물로 여겨온 편견 어린 시선에 있다고 레디커는 말한다. 120센티미터의 저신장 장애인, 척추 장애인이었던 레이는 괴짜로 생각되었고 그를 “미쳤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당대에도, 후대에도 많았다. 역사가들조차 그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그를 비하하고 조롱했다. 벤저민 레이의 계몽은 함선의 갑판과 노예사회의 부둣가에서 이루어진 아래로부터의 계몽이었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모든 유색인과 민족”의 잡색 부대 한가운데서 레이는 역사를 만들어갔다. 벤저민 레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볼테르와 18세기 계몽운동과 같이 고위층과 연관된 반노예제의 역사보다 더 긴 궤적을 가진 “아래로부터의” 폐지론 역사에 속한다고 레디커는 말한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 파레시아
고대 그리스의 견유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볕을 가리지 않게 비켜서 주시오”라고 말한 일화로 유명하다. 디오게네스는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인 파레시아를 실천했다. 독학 철학자 벤저민 레이는 자신이 거주하는 동굴에 이백여 권의 장서가 있는 서재를 갖추고 있었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탐독했다. 디오게네스도 벤저민 레이가 열정적으로 읽은 사상가 중 한 명이었다. 레이는 디오게네스와 마찬가지로 당시 현실에서 결코 쉽게 행할 수 없는 행동을 실천하고 권력자를 비판하는 용기를 보였다. 그는 노예제가 당연시되던 시기에 권력을 지닌 사람에게 맞서며 노예제의 즉각적인 폐지를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레이는 퀘이커교 모임에서 네 번 파문을 당하는 불명예 속에서도 굽히지 않았고 저항을 이어갔다. (2018년에 벤저민 레이는 자신을 파문했던 네 개의 퀘이커교 집단에서 “복위”되었다.) 그의 전복적 요구에 두려움을 느낀 권력자들은 억압자로 돌변하여 그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벤저민 레이는 동료 퀘이커교도들에게 “당신은 어느 편인가?”를 물으며 노예제의 편인지 노예제에 맞서는 편인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레디커에 따르면 그 시대에 지구상에서 가장 급진적인 사람임이 분명했던 벤저민 레이의 조언, “이득을 위해 세상에 독약을 푸는 부유한 자들을 경계하라”는 외침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절실한 울림을 갖는지 모른다.

북트레일러
https://www.youtube.com/watch?v=NBfYSQGJX40&list=PLiQ_-1HFou4EZeBA9IgDcZgymqccbtgJt&index=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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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박지순
대구대학교에서 재활심리학을 공부했고 현재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에 재직 중이다. 장애, 성별, 문화 등에 따른 차별 해소 및 교육과 사회 분야에서의 평등권 실현을 위한 연구와 글쓰기에 힘쓰고 있다. 번역서로는 『노예선』(갈무리), 『메이데이』(갈무리), 『대서양의 무법자』(갈무리), 『벤저민 레이』(갈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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