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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만든 사람
저자 : 최은미 ㅣ 출판사 : 문학동네

2021.06.11 ㅣ 392p ㅣ ISBN-13 : 9788954679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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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문학 > 국내소설 > 한국소설
“당신의 소설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말하게 될까봐
말할 기회가 영영 없을까봐 초조했다.” _황정은(소설가)

아름답고 광포하고 쓸쓸한 소용돌이로 휘몰아치는
최은미 소설세계의 눈부신 분기점

2021 현대문학상 수상작 「여기 우리 마주」,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 「눈으로 만든 사람」 수록


정제된 문장을 차분히 쌓아올려 단숨에 폭발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가 최은미가 자신의 작품세계에 눈부신 분기점이 될 세번째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을 선보인다. “이후의 한국문학을 위한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라는 평과 함께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여기 우리 마주」와 젊은작가상 수상과 더불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발표 당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눈으로 만든 사람」을 비롯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쓰인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은,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 『아홉번째 파도』를 통해 끊임없는 문학적 확장을 이루어낸 작가가 마침내 ‘최은미 스타일’이라고 부를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결과물이다.
앞선 작품들이 이미 결정된 세계에 놓인 인물을 통해 벗어날 길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억압의 정념을 그려냈다면, 십대 소녀부터 유자녀 기혼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번 소설집은 우리가 이들에 대해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멀리 비켜남으로써 무엇도 고정되지 않았기에 어디로도 갈 수 있는 해방의 파토스를 이끌어낸다. 참고 견디며 인내하던 최은미의 인물들은 이번 소설집에 이르러 터뜨리고 외치며 달려나간다. 하지만 이는 감정을 빠르고 뜨겁게 분출하기보다는 얼음 결정처럼 차갑고 예리하게 깎아나감으로써 마치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듯한 컵 속 물처럼 아슬아슬한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어코 한 방울의 물을 떨어뜨려 모든 것을 터뜨릴 때, 최은미 소설의 인장인 서늘한 파괴력이 뿜어져나온다. “일어났다 사라지고, 솟아났다 흩어지고, 눌리고, 찌그러지고, 터져나와 천장에 파편처럼 박혀버린 모든 감정, 말들, 욕과 사랑, 애원과 멸시, 체념, 기대, 자책과 비명”(「보내는 이」, 19쪽)을 끄집어내어 우리 안에서 휘몰아치는 아름답고 광포하고 쓸쓸한 소용돌이를 선명하게 그려내는 것. 『눈으로 만든 사람』은 그 소용돌이에 새겨진 독창적인 무늬로 빛나는, 2020년대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때 첫머리에 놓이게 될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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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보내는 이 … 007
여기 우리 마주 … 047
눈으로 만든 사람 … 091
나와 내담자 … 131
운내 … 153
美山 … 197
내게 내가 나일 그때 … 223
11월행 … 275
점등 … 311

해설|강지희(문학평론가)
파열하며 새겨지는 사랑의 탄성 … 349

작가의 말 … 385



[본 문]

무채색으로 가라앉은 진아씨네 집에서 식탁 등은 제일 빛나는 사물이었다. 우리는 그 등 아래에서 얼마나 여러 초저녁 함께 술을 마셨던가. 윤이들은 집안에서 안전하게 놀고 있고 남편들은 안 오거나 늦었고 우리에겐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보내는 이」, 14쪽)

내가 사는 집. 두세 방울의 불빛으로 겹쳐지면서 아른아른 떠 있는 집. 나는 그 순간의 느낌을 위해 집에 일부러 불을 켜두고 오기도 했다. 내 십여 년이 통째로 담겨 있는 곳을 보려고. 일어났다 사라지고, 솟아났다 흩어지고, 눌리고, 찌그러지고, 터져나와 천장에 파편처럼 박혀버린 모든 감정, 말들, 욕과 사랑, 애원과 멸시, 체념, 기대, 자책과 비명, 난간을 잡고 비틀, 하면서 그걸 건너다보고 있으면, 하…… 그래 씨발, 뭐 있나, 나의 윤이도, 진아씨의 윤이도, 진아씨도, 남편도, 나 자신까지도, 나는 다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떤 수단으로든 나에겐 그런 감정적 고양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다. 그런 걸 안 느낀 날은 초조하고 또 초조할 정도로.(「보내는 이」, 19쪽)

일 때문에 가족들한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그 기분. 일을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그 기분. 그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동안 지긋지긋하게 반복됐던 감정이었고 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경험과 체념이 쌓이면서 조금씩 뭉개가던 감정이기도 했다. 어쩌면 맞춰가고 있다고 믿었던 일과 가사와 육아의 균형을 2020년 봄은 다시 원점으로, 원점 그 이전으로 밀고 가고 있었다.(「여기 우리 마주」, 59~60쪽)

수미는 알고 있었을까. 누구누구의 맘도 아닌, 무슨무슨 샘도 아닌, 딱 떨어지는 ‘선생님’이 되어야 할 때, ‘지도사’라는 정식 호칭으로 서 있어야 할 때, 내가 나의 무엇을 보이지 않게 하는지. ‘선생님’으로 생존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깨끗하고 멀쩡하게, 주부로서의 노동만을 선별해서 지워버리는지. 하지
만 ‘선생님’인 그 순간에도 내가 알아서 감춰버린 그 노동에 얼마나 실시간으로 잠식당하고 있는지. 어떻게 얼굴이 지워진 채로 다른 여자에게 다른 여자가 되어가는지. 나로 서 있기 위한 최소한의 힘을 기르기 위해 어떻게 또다시, 계속 다시, 매일 다시, 내 노동을 지우고, 지운 것에 먹히고, 먹혀가는 채로 지우면서, 편하게 사는 여자들 중 하나가 되는지. 왜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지워야만 내 실력을 신뢰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여기 우리 마주」, 74쪽)

그뒤로 내담자는 입을 닫아버린다.
그대로 시간이 흐른다.
기다리기로 한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자 속 집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담자를, 상담자는 기다린다. 이 모래치료실이 안전한 곳이며 모래 상자 안에선 무엇을 해도 허용된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기다리는 것으로 전달한다.(「나와 내담자」, 141~142쪽)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고 사는 것. 강수영이 그걸 얼마나 원하는지 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강수영에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한 번도 만지지 못하던 것들을 자신의 상자 안으로 가져오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나와 내담자」, 150쪽)

수련자는 살아온 과거를 시간순으로 떠올리며 과거를 시각화해야 한다.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어떤 장면들, 섬광 같은 기억들은 물론 잡히지는 않으나 없는 것은 아닌 기억들까지 모두, 모두 시각화해 차례차례 지구에 버려야 한다. 기와유리집의 상점 한쪽에 쌓여 있던 소책자에 그 방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는데, 기억을 선명히 불러내는 과정을 사투에 빗댔던 것이 떠오른다.(「운내」, 162쪽)

내가 정말 가져보고 싶었고 만져보고 싶었던 것, 그것이 내 손에 닿자마자 훼손되던 순간의 충격과 슬픔을, 나는 여전히 떠올린다.(「美山」, 216쪽)

유정이 두려운 것은 유정 자신이 가족들을 안 보게 되는 것이었다. 유정이 두려운 것은, 무언가를 체념한 채로 계속 가족들을 보면서 그런 자기 자신을 다시 혐오하게 되는 것이었다. 유정이 원하는 것은 어떤 분열도 겪지 않고 제정신으로 가족들을 보는 것이었다.(「내게 내가 나일 그때」, 264쪽)

유정씨는 빠져나오고 싶다고 했어요. 오랫동안 갇혀 있던 원래 그래의 세계에서 유정씨는 빠져나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비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통과해서 나오고 싶다고 했어요.(「내게 내가 나일 그때」, 266쪽)

등에 막 불이 켜지는 걸 함께 본다는 건 뭔가 마법 같고 선물 같은 데가 있었다. 그곳에 서서 같이 등을 보고 있자 경은 왠지 민과 아주 가까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점등」,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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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설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말하게 될까봐
말할 기회가 영영 없을까봐 초조했다.” _황정은(소설가)

아름답고 광포하고 쓸쓸한 소용돌이로 휘몰아치는
최은미 소설세계의 눈부신 분기점

2021 현대문학상 수상작 「여기 우리 마주」,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 「눈으로 만든 사람」 수록



정제된 문장을 차분히 쌓아올려 단숨에 폭발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가 최은미가 자신의 작품세계에 눈부신 분기점이 될 세번째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을 선보인다. “이후의 한국문학을 위한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라는 평과 함께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여기 우리 마주」와 젊은작가상 수상과 더불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발표 당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눈으로 만든 사람」을 비롯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쓰인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은,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 『아홉번째 파도』를 통해 끊임없는 문학적 확장을 이루어낸 작가가 마침내 ‘최은미 스타일’이라고 부를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결과물이다.
앞선 작품들이 이미 결정된 세계에 놓인 인물을 통해 벗어날 길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억압의 정념을 그려냈다면, 십대 소녀부터 유자녀 기혼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번 소설집은 우리가 이들에 대해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멀리 비켜남으로써 무엇도 고정되지 않았기에 어디로도 갈 수 있는 해방의 파토스를 이끌어낸다. 참고 견디며 인내하던 최은미의 인물들은 이번 소설집에 이르러 터뜨리고 외치며 달려나간다. 하지만 이는 감정을 빠르고 뜨겁게 분출하기보다는 얼음 결정처럼 차갑고 예리하게 깎아나감으로써 마치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듯한 컵 속 물처럼 아슬아슬한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어코 한 방울의 물을 떨어뜨려 모든 것을 터뜨릴 때, 최은미 소설의 인장인 서늘한 파괴력이 뿜어져나온다. “일어났다 사라지고, 솟아났다 흩어지고, 눌리고, 찌그러지고, 터져나와 천장에 파편처럼 박혀버린 모든 감정, 말들, 욕과 사랑, 애원과 멸시, 체념, 기대, 자책과 비명”(「보내는 이」, 19쪽)을 끄집어내어 우리 안에서 휘몰아치는 아름답고 광포하고 쓸쓸한 소용돌이를 선명하게 그려내는 것. 『눈으로 만든 사람』은 그 소용돌이에 새겨진 독창적인 무늬로 빛나는, 2020년대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때 첫머리에 놓이게 될 작품집이다.


팽팽한 추위와 옅은 빛으로 가득한 계절의 한가운데서
깎이고 덧대어지고 다시 쌓아올리며 지금의 내가 된다는 것

『눈으로 만든 사람』은 크게 여성 인물이 가족과의 관계에서 겪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소설과 여성 인물이 가족 바깥의 인물과 맺는 특별한 관계에 집중하는 소설로 나눌 수 있다. 「눈으로 만든 사람」 「美山」 「11월행」 등이 전자에 속한다면 「보내는 이」 「여기 우리 마주」 「운내」 등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눈으로 만든 사람」은 이번에 실린 아홉 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처음에 쓰인 것으로, 이후 최은미의 소설세계가 뻗어나갈 여러 갈래의 방향을 가리켜 보인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강윤희’에게 어느 날 작은아버지인 ‘강중식’이 아들 ‘강민서’를 잠시 보살펴달라고 부탁해오며 시작된다. 어릴 때 소아림프종 진단을 받았던 강민서는 항암 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최근 암이 재발한 상태다. 강윤희는 강민서와 함께 지내는 동안 중학생답지 않게 세심하고 다정한 그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강민서는 강윤희가 잊고 싶어한, 그러나 떨쳐낼 수 없는 강중식과의 오래전 기억을 상기시킨다. 강중식은 강윤희가 어렸을 때 그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나와 내담자」 속 ‘강수영’과 「내게 내가 나일 그때」의 ‘유정’의 이야기에 간섭하며 세 작품을 일종의 연작으로 바라보게 하는데, 세 작품 모두 인물을 휩쓸고 지나간 사건의 폭력적인 면을 그리는 데 열중하기보다는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인물의 모습을 세심하게 다룬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강민서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던 강윤희가 눈사람이 다 녹아 흘러내린 뒤에도 “눈사람, 없어진 거 아니야. 그냥 모습이 변한 거야”(128쪽)라고 했듯이, 「나와 내담자」에서도 작가는 상담 기간이 끝나고 더이상 찾아오지 않는 강수영을 기다리는 상담자 ‘나’의 모습으로 소설을 마무리함으로써 이 기다림에 언젠가 끝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내게 내가 나일 그때」의 유정도 사정은 비슷하다. 소설가인 유정은 오래전 미산이라는 마을에 살며 가깝게 지냈던 ‘창용이 오빠’의 연락을 받고 동생 ‘유태’와 함께 내린천휴게소로 향한다. 내린천휴게소 아래 있는 그 마을은 어린 시절 유정이 겪은 상처가 고스란히 파묻혀 있어 언제라도 유정을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 속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곳이다. 소설은 유정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손쉬운 공감을 차단하면서도, 유정이 창용이 오빠의 아내이자 베트남 이주 여성인 ‘디엔’과 만나고 상처의 기원인 미산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유정이 고통을 ‘통과해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기이할 정도로 끈질기게 잠복돼 있다”(「내게 내가 나일 그때, 246쪽)가 인물들로 하여금 “그때로 시간을 되감고 또 되감는 것을 멈출 수”(「운내」, 158쪽) 없도록 만드는 일은 이번 소설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열세 살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운내라는 곳에 보내진 ‘나’가 그곳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자아이 ‘승미’와 보낸 한 시절을 그린 「운내」와, ‘나’가 어린 시절 잠자리를 잡던 순간과 동생을 잃던 순간을 포개놓음으로써 무언가가 찢어지고 분질러지고 쪼개지던 그때의 감각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美山」은 소중한 무언가를 과거에 “영영 두고 올 것을 알지 못한 채”(「11월행」, 279쪽) 그 시기를 지나온 이야기로, 끈적이고 축축하며 불가해한 채로 남아 있는 그 시절에 상실로 인한 슬픔의 색채를 덧칠한다.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는 마음,
너무 사랑해서 말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아서 말할 수 없고,
가까워서 말할 수 없고, 멀어서 말할 수 없고,
말하고 나면 별게 아닌 게 되어버리는 얘기들.”

그리고 그 상실은 타인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잃는 감각과도 연결된다. 소설집 서두에 나란히 배치된 「보내는 이」와 「여기 우리 마주」는 유자녀 기혼 여성이 가족과 사회 안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압도적인 디테일로 표현해냄으로써 ‘나’로 서 있기 위한 여성들의 고투와 그들이 서로를 마주했을 때 터져나오는 격렬하면서 낯선 생동감을 담아낸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급격히 달라진 삶을 그려낸 「여기 우리 마주」에서 ‘나’는 구 년간의 홈 공방 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상가에 공방을 연 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나’는 일과 육아,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과 고독감에 질식할 것 같은 나날을 보낸다. 이는 아이를 키우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수미’ 또한 마찬가지다. 일과 육아 모두에서 강박에 가까운 부담을 느끼는 이들 유자녀 기혼 여성의 삶은 코로나19의 확산과 더불어 위기를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보내는 이」의 ‘나’와 ‘진아씨’ 또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며 열한 살의 여자아이를 키운다는 공통점으로 서로 가까워진다. 짧지 않은 시간 함께해온 두 사람의 관계는 그러나 어느 순간 진아씨를 둘러싼 분위기가 달라지며 변화를 맞고, ‘나’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아씨에게 말을 걸기 어려워진다. 그런 와중에 강력한 태풍이 북상한 주말, ‘나’는 남편이 집에 오는 주말이면 늘 완강히 내려져 있던 진아씨네 거실 블라인드가 그날따라 걷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설명할 수 없는 기미에 다시 몸을 돌리고, 진아씨네 창에 눈의 초점을 맞추던 순간을. 창틈 사이로 무언가를 알아채던 순간을. 어, 어, 하는 찰나, 안에서부터의 압력으로 부풀고 부푼 듯 진아씨네 유리창이 하얗게 터져나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집을 감싼 전면창이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보았다. 그걸 본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닌 듯 비명인지 탄성인지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동과 동 사이를 메아리처럼 메웠다.(「보내는 이」, 41쪽)

임계점에 다다른 인물의 마음 상태를 유리창이 깨지는 것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 보이는 이 장면은 그러나 우리에게 다른 느낌으로도 다가온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 아주 나쁜 선택을 하진 않을 거”(「보내는 이」, 11쪽)라는 ‘나’의 믿음을 떠올리면, 이 강렬한 장면은 어떤 한계에 이르러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외부를 향해 간절한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현실에 밀착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지금 한국사회에 흐르는 공기를 적극적으로 환기하는 이번 소설집은 여성-가족-사회를 둘러싼 최은미의 문제의식이 첨예해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자, 그와 관련된 관습적인 재현을 거부함으로써 어떤 카테고리로도 포섭되지 않는 최은미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소설 속 유례가 없는 폭염이나 모든 것을 동결시킬 듯한 한파와 같은 예외적이고 돌출적인 상황이 지나간 자리에서, 이제 안으로 침잠하는 대신 발산하는 법을 익힌 인물들은 그 자리를 우리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다른 무엇으로 채워갈 것만 같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것까지가 최은미의 이번 소설집이 달성한 성취인 듯하다. 그렇게 한 명의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성하는 문학적 인자를 완성할 때의 강렬함과 눈부심이 이번 소설집에 담겼다.



나는 흔들리는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겨본 적이 있다.
밤새 등을 밝혀본 적이 있고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는 창인 채로도 바깥을 꿈꿔본 적이 있다.
빛과 동시에 존재하는 눈사람을 알고 있고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게 아닌 것들을 알고 있다.
소설을 조금은 덜 사랑하고 싶다고, 소설과 삶을 분리한 채 살고 싶다고 한쪽에선 늘 생각했지만, 내가 자기혐오에서 조금이라도 발을 뗄 수 있었다면 그건 모두 소설을 쓰던 시간 덕분이었다. _‘작가의 말’에서



추천사

여자가 셋인데 엄마 둘에 딸 둘.
이러면 긴장하고 불안을 느낄 사람은 모두 최은미의 소설에 붙을 것이다. 아주 붙을 것이다. 최은미의 소설에 붙은 사람들은 그래서 나도 그래, 나도 알아, 그걸 알아, 라고 자기 말을 소설 곁에 적기도 할 것이고, 묻기 직전인 질문과 악몽을 입에 가둔 채 사람을 골똘히 바라보는 최은미의 여자들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할 것이다. 이 여자들 때문에 내가.
최은미 작가를 보려고 사람 모인 자리에 나가서 최은미 작가가 있느냐고 여기 와 있느냐고 묻고 다닌 적이 있다. 그를 만나 당신의 소설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말하게 될까봐 말할 기회가 영영 없을까봐 초조했다. 나는 최은미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찢어지고 쪼개지고 부러지고 뜯어지고 찢어지고 찢어지는, 뻔뻔하게도 찢는 이가 있어 찢어지는 여자들의 얼굴을 안다. 최은미 작가가 인근에 있는 것 같다. _황정은(소설가)

최은미가 이번 소설집에서 그려내는 다층적이고 복잡다단하고 예민한 여성들의 관계는 우리의 문학적 감수성이 새로 개척하고 있는 감정 지도의 중요한 한 단면을 드러낸다. 그 아래 여성들의 들끓는 욕망과 새로운 존재 증명의 형식이 있다. 사회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될 수 없기에 미묘한 현기증을 동반하는 이 관계는 자기 의지와 에너지를 황홀경의 상태로 끌어올리고, 끈적하고 축축한 파토스 아래 눌린 말들을 쏟아낸다. 불균질한 혼돈으로 출렁이는 이 상태는 여성을 시련의 존재나 신화적 존재가 아닌 생생한 감각을 지닌 탄력적인 존재로 되살려낸다. 최은미의 소설적 재능을 이끌어온 특유의 그 허기는 소중한 존재들의 죽음을 품고, 폭력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언어들을 발명해가며, 이렇게 기이하고 충만한 사랑에 이르렀다. 몸속을 휘도는 회오리바람을 견디며 최은미가 이 자리에 도달했기에, 한국문학의 촉수로 감각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영역은 새롭게 확장되었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북트레일러

https://www.youtube.com/watch?v=V2KuA01U2J8&t=18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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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2008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중편소설 『어제는 봄』이 있다. 제5회, 제6회, 제8회 젊은작가상, 대산문학상, 2019년, 2020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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