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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여성철학자 트리오
저자 : 신창석 ㅣ 출판사 : 일조각

2021.01.30 ㅣ 416p ㅣ ISBN-13 : 9788933707852

정가35,000
판매가33,250(5%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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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규격 외(225mm X 152mm, 신국판)
제품구성 양장
이용약관 청약철회
국내도서 > 인문 > 서양철학 > 서양철학일반/교양
중세시대의 여성철학자들은 부드러운 철학과 뜨거운 신앙을 통해 영성적 활동에 집중했다. 그들은 인간의 영성적 지평을 바라보며, ‘여성신비주의’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세 명의 여성철학자 엘로이즈, 힐데가르트 폰 빙엔, 제르트루다를 통해 ‘위대한’ 여성철학자들을 길러 낸 중세시대라는 관점에서 중세철학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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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머리말

제1장 성의 의미와 기원
1. 성의 언어적 의미
성의 어원 I 젠더의 언어적 발생과 의미
2. 성서에 나타난 성의 구별
구약성서의 성적 구별 I 신약성서의 성적 구별
3. 그리스신화에 나타난 성의 구별
플라톤 『향연』의 에로스 I 플라톤 『향연』에 나타나는 성의 기원 I 성의 기원에 대한 피치노의 해설
4. 그리스철학에 나타난 성의 구별과 여성철학
그리스 비극에서의 성적 구별 I 크세노폰의 여성에 대한 보고 I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

참고문헌

제2장 중세철학과 여성철학자
1. 중세철학의 특성과 시대 구분
중세철학의 복합적 의미 I 중세철학의 발단 I 그레고리우스 개혁과 시민의식의 변화 I 베렌가리우스의 변증법적 사고와 중세의 전환 I 안셀무스의 합리적 신앙 I 중세 대학의 성립 I 중세 대학의 세계화 I 대결과 조화의 중세 황금기와 스콜라철학 I 중세의 가을
2. 중세철학의 역할과 관심
중세철학의 학문적 역할 I 철학과 신학의 관계 I 중세철학의 사회적 역할 I 근세철학의 전조 I 철학적 신학의 우위성
3. 중세의 문헌과 철학에 대한 관심
중세 문헌의 출판 I 17세기 스콜라철학의 아시아 유입과 출판 I 18세기의 중세에 대한 향수 I 19세기 중세철학의 사조와 토미즘의 회귀 I 중세철학의 유구성 I 중세철학의 현대적 방향
4. 중세 위기 속의 세계화와 여성의 등장
중세철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 I 십자군전쟁의 위기와 영향 I 몽골 침략에 따른 중세의 충격과 확장 I 궁정 문화와 여성 I 성모 마리아 공경과 여성관의 변화
5. 중세 여성의식과 여성철학자들의 등장
중세 부계사회에서 여성 지위의 다양성 I 전환기의 개혁의식과 신앙운동의 발현 I 여성들의 청빈운동 I 개혁 수녀원의 탄생 I 중세 여성운동가 베긴네의 출현 I 베긴네의 삶과 시대적 역할 I 베긴네의 공동체 규정

참고문헌

제3장 사랑의 개혁가, 엘로이즈
1. 엘로이즈의 생애와 사랑의 사연
엘로이즈의 탄생과 성장기 I 엘로이즈의 연인 아벨라르 I 엘로이즈의 역사적 인기 I 클뤼니 수도원 페트루스 원장의 증언 I 풀코가 전하는 아벨라르의 사연 I 로스켈리누스가 전하는 엘로이즈에 대한 비난 I 엘로이즈에 대한 상반된 이해
2. 아벨라르의 자전적 고백에 나타난 엘로이즈
아벨라르의 성장기 I 엘로이즈와의 연애사 I 결혼과 비극 I 수도자 아벨라르와 수녀 엘로이즈 I 아벨라르에 대한 박해
3. 엘로이즈가 말하는 사랑의 의미
사랑의 의무 I 여성의 위대성과 자유 I 거룩한 도덕과 사랑의 진실
4. 자매가 형제에게, 형제가 자매에게
여성으로서의 한과 사랑 I 엘로이즈의 고백과 저항 I 아벨라르의 참된 사랑 I 아벨라르의 신앙고백
5. 엘로이즈의 실천철학과 여성 수도생활의 개혁
엘로이즈의 철학적 열정 I 사랑의 의무와 수녀원 규칙의 개혁 I 여성주의적 실천철학 I 여성의 권리 I 도덕적 문제 제기 I 전례에 나타난 사랑의 노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서한 인용표
엘로이즈 원전 출처
참고문헌

제4장 치유의 예언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
1. 성녀의 탄생과 성장
힐데가르트의 초상화 I 힐데가르트가 탄생한 시대 I 힐데가르트의 탄생과 어린 시절 I 힐데가르트의 운명과 수녀원의 교육
2. 여성 지도자 힐데가르트
종신서원 수녀가 되다 I 사상의 건축과 저술활동 I 여성 지도자의 설교여행
3. 나는 본다−video
현시 능력 I 현시의 기억과 기록 I 현시의 진리
4. 힐데가르트의 작품
『길을 알라』 I 『덕행서』 I 『하느님의 업적』 I 『원인과 치료』 I 『자연학』 I 『작곡집』 I 『서간집』
5. 힐데가르트의 사상
자신과 맺는 관계로서의 자아 I 사랑의 의미 I 인간의 성적 질서와 섹슈얼리티 I 성의 철학

힐데가르트 원전 출처
힐데가르트 라틴어 작품 목록
참고문헌

제5장 예수성심의 신학자, 제르트루다
1. 사랑의 생애
탄생과 수녀원학교 입학 I 헬프타 수녀원의 어린 제르트루다 I 신비주의 산실에서 만난 선각자들 I 신비주의를 위한 기초교육 I 수도자의 길과 학문의 길
2. 신비체험과 신비주의 저술
신비체험의 시작 I 신비주의 저술활동의 시작 I 독자들에 대한 당부의 말
3. 신비주의 작품과 영성수련
신비주의 작품 I 사랑의 영성수련 I 신랑과 신부의 신비적 일치
4. 신적 현시에 대한 기록
얼굴에 얼굴을 맞대고 보다 I 장미의 기억 I 하느님의 빛을 보다 I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 보기
5. 신비주의 명상
사랑의 나무에 대한 명상 I 호두와 사과에 대한 명상 I 삶과 죽음에 대한 신비주의 명상 I 죽음의 신비에 대한 명상 I ‘성 베네딕트 나무’에 대한 명상 I 삶 속의 죽음에 대한 실존 명상

제르트루다 원전 출처
참고문헌

인명 찾아보기



[본 문]

결국 구약성서는 창조론적 관점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선언한 셈이다. 말하자면 남성과 여성은 온전히 창조주 하느님의 유사성이요, 하느님의 모상이다. 하느님의 모상인 한에서 인간은 예외 없이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아무런 구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차이나 차별도 없다. − 31쪽 −

서양 중세는 소위 필로소피아를 학문의 근간으로 삼았다. 필로소피아로서의 철학이란 원래 서양의 고유한 학문을 의미한다. 또한 ‘지혜에 대한 사랑 philo-sophia’에서 지혜를 뜻하는 라틴어형 ‘소피아’는 언어적으로 남성형이 아니라 ‘여성형’ 명사이다. 소피아는 문화 전반에서도 ‘여신’으로 등장한다. 또한 지혜는 그야말로 문법적 성에서도 여성이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여성적 지혜는 남성적 무력보다 강하다. 그러나 이는 주로 상징의 세계에서나 남아 있는 일이다. 그리스 문화에서 학문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철학’이 전반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전개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여성철학자들을 길러 낸 중세시대라는 관점에서 중세철학을 탐방해 보고자 한다. − 55~56쪽 −

아라비아 세계 또한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위력뿐만 아니라 학문과 철학을 통해 유럽 전체에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아라비아는 일찍이 드물고 기이한 경로로 찬란한 그리스 문화와 학문을 흡수하여 새로운 아라비아 문화를 이룩하고 있었다. 아라비아의 학문이란 결국 그리스의 이성과 논리였으며, 더욱 엄밀히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리켰다. 아라비아어로 정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파리, 볼로냐, 옥스퍼드, 나폴리 등과 같은 유럽의 대학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유럽의 입장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이 생소했지만 혁신적 사고였다.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은 계시 신앙보다는 자연적 이성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유럽에는 당연히 위험하고 이단적인 것으로 보였다. − 79쪽 −

중세철학은 고대 원전의 분산, 다양한 견해를 가진 교회 역사가들 간의 의견 충돌, 중세의 아라비아인 및 유대인들과의 교류에서 야기되는 수많은 전통의 갈등을 하나의 특정한 전통 사회로 정리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 세계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대충 믿어 왔던 모순적 자기 해명의 방법을 처음으로 의식한 것이었다. − 90쪽 −

스콜라철학은 고대 그리스철학과 아라비아사상, 유대사상의 유입을 학문적으로 소화하는 가운데 ‘대학’을 설립했으며, 학술 언어인 라틴어를 공용으로 하는 교육의 전형을 성립시켰다. 대학교육은 현대 인류 문화의 근간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세계의 교육구조를 섭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세 황금시대의 의미는 종교적·정치적·문화적 위기를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적 조화로 전환시킨 역동성에 있다. − 121쪽 −

중세시대에 대한 큰 오해 가운데 하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이다. 현대 연구자들이 새로이 부각시킨 전쟁, 이단, 이교도, 개혁, 종교재판, 신비주의, 법률, 연금술, 점성술, 의술, 예언, 신심운동 등과 같은 중세 심층부에 대한 상징 개념들은 ‘여성’, 즉 페미나라는 젠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역사를 크게 분류했을 때 현대는 말할 것도 없고 고대나 근세에 비해 중세 여성들이 특별히 차별을 받았다는 견해는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노예나 농민 또는 성채 안의 사람들을 뜻하는 ‘부르주아’ 밖의 피지배층이나 프롤레타리아라는 사회적 구분 이외에 특별히 중세시대에 여성이 차별받은 젠더였다는 근거를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 124쪽 −

중세에 걸쳐 성모 마리아는 인간을 위한 신적 은총의 중재자로 우뚝 섰다. 이때부터 마리아의 후손들인 여성들의 신분이 일정 부분 고양되는 계기를 맞이했다. 당시까지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부족하고 사회적으로 종속적이던 여성의 이미지가 가톨릭교회의 성모 마리아 공경으로 인해 헌신적이고 신실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존재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 공경의 분위기가 중세 모든 여성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사회적 권위를 드러나게 개선시킨 것은 결코 아니었다. − 142~143쪽 −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철학적·역사적·여성학적 연구들은 소위 ‘중세 암흑시대’라는 말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그림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암흑시대라는 말도 중세가 어둡다는 의미보다는, 현대인이 현대의 뿌리인 중세에 대해 깜깜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세의 여성상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정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중세를 암흑시대로 특정하던 마녀사냥이 르네상스의 산물로 드러나면서, 특히 6~9세기의 중세 전기의 여성들은 그 이후의 여성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문화적 지위를 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 147쪽 −

중세의 청빈운동은 점차 공동체를 형성했으며, 이런 공동체에 가담하려는 사람들은 귀족이든 하인이든 차별이 없었다. 특히 청년들의 청빈운동은 결국 개혁수도회와 대학의 설립으로 이어져 그리스도교 사회를 개혁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가난을 무릅쓴 청빈운동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별도 없었다. 여성들 가운데는 독신녀와 유부녀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리의 여인들까지 이런 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청빈운동의 설교자나 주동자들이 가정을 떠나 온 유부녀들을 집으로 되돌려 보내기를 거부하면서 현실적으로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 151~152쪽 −

의식적 여성들은 가난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새로이 개척하게 되었다. 수도원 밖의 여성들도 종교적 삶을 실천하고자 했으며, 특히 새로 등장한 도시를 중심으로 사회복지를 위한 다양한 구제 활동을 벌여 나갔다. 수도회를 통해 수도회 안에서 영성적 삶을 추구하는 수녀들의 신앙운동이 일어났으며, 이와 함께 주로 도시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려는 세속에서 살아가는 수녀들의 운동, 즉 베긴네의 운동이 전개되었다. − 164~165쪽 −

베긴네들이 추구한 신앙 공동체적 삶의 방식은 여성들의 수도생활에 대한 열망을 가열시켰고, 다양한 분야의 여성 수도자들을 배출하는 터전이 되었다. 소위 중세 여성 수도회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바야흐로 역사에 유래가 없던 여성철학자들이 활동을 개시하면서 또 하나의 철학적 기류가 될 여성 신비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 167쪽 −

엘로이즈는 ‘진정한 고백’에서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새로운 윤리학적 사고를 풀어낸다. 중세 황금기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모든 선한 일뿐만 아니라 악한 일에 대해서도, 모든 행복한 일뿐만 아니라 불행한 일에 대해서도 하느님의 이름을 붙여 왔다. 그 결과 모든 인간적 행위의 선과 악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판단해 왔다. 급기야는 전쟁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엘로이즈는 철학적 반론을 제기한 셈이다. ~ 엘로이즈에게 있어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나약한 존재였다. 엘로이즈의 위대한 용기도 스스로의 나약함을 아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삶에서도 엘로이즈는 승리의 면류관이 아니라 위험을 피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 236쪽 −

엘로이즈는 여기서 규칙을 정할 필요가 없는 행위의 대상을 ‘무관한 행위’로 본다. 무관한 행위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도덕적으로 선악을 판단할 필요가 없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후일 토마스 아퀴나스의 행위론에 이르러 분명하게 개념화되었다. 토마스는 행위를 인간의 행위와 인간적 행위로 구분했다. 인간적 행위는 냉철한 이성과 자유로운 의지를 동반하는 행위로, 선한 행위이거나 악한 행위로 구분된다. 반면 인간의 행위는 무의식에 가까운 행위로, 선이나 악과는 무관한 행위이다. 엘로이즈는 인간의 일상생활에 수반되면서도 선악의 구분과 무관한 행위는 근본적으로 도덕적 판단이나 규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관용의 법칙을 분명히 했다. − 253쪽 −

유럽도 더 이상 원시 시대가 아니었다. 유럽인들도 소위 ‘암흑시대’로 불리기도 하는 중세 초기의 미명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농경을 개선하면서 경제적 풍요를 가져왔다. 나아가 풍요의 여파로 근대적 도시와 함께 현대 교육의 뿌리가 될 대학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도시와 대학은 서로의 필요에 따라 함께 발생하고 있었으며, 대체로 하나의 도시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하나의 대학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러한 도시의 상업 발전과 대학의 고등 교육은 유럽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거대 권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 275~276쪽 −

차가운 철의 무력이 성행하는 가운데서도 따뜻한 사랑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다. 당시 유럽을 이끌던 교황도, 황제도, 중세의 정예 기사단도 아닌, 힘없는 여성들과 순박한 어린이들에 의해 정신적 각성의 표징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스도가 매달려 죽은 십자가가 남성들에게는 십자군이라는 무력의 상징이 되었지만, 여성들과 어린이들에게는 점차 사랑의 상징이 되어 갔다. 이렇듯 폭력의 십자가가 사랑의 십자가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땀과 피가 배어 있었다. 풍요와 무력이 실패한 자리에서 가난과 사랑으로 이겨 내리라는 어린이들의 소망이 자라나서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와 같은 청빈수도회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개혁수도회들은 유럽의 학문, 종교, 정치에 걸쳐 조용한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외부로의 팽창과 정복이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내면으로 침잠하고 자각하려는 여성들의 소망은 기라성 같은 여성 철학자들과 신비가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 278쪽 −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현시를 냉철한 이성을 통해 이해했으며, 의식적 인식을 스콜라철학의 범위 내에서 받아들였다. 따라서 힐데가르트가 거친 라틴어로 서술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문제는 뒤이어 꽃을 피운 스콜라철학에서 엄밀하고 장엄하게 조명되었다. 힐데가르트는 토마스 아퀴나스 이전에 토마스와 같이, ‘야훼’의 의미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을 모두 거부했다. 즉 그녀 역시 ‘야훼’에 대해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묻지 않았으며, 불완전한 문장에 포함된 의미라고도 보지 않았다.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오로지 보고 들었다. 힐데가르트에게 존재하는 분은 충만함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하느님은 행위하고 작위하고 창조하고 완성하는, 존재 그 자체로 충만하시다. − 303~304쪽 −

힐데가르트는 「덕행별곡」이라는 음악 드라마에서 정화의 길을 가는 ‘영혼’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노래하게 했다.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셨으니, 나는 세계를 해치지 않고 오로지 사용하기만을 원한다네.” 자연환경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성스런 작품이다. 그러니 인간에게 환경을 훼손할 권리라고는 전혀 없다. 우주 속에서 잠시 지구촌을 여행하는 모든 인간은 오로지 지구를 소중히 사용하고 모든 인종과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줄 심각한 의무를 가질 뿐이다. −307~308쪽 −

힐데가르트는 세계 창조의 의미와 완성을 한마디로 사랑에 두었다. 사랑은 신적 창조의 내적 연대성이기 때문이다. 힐데가르트는 초월적 하느님을 세상의 모든 사물 안에서 서로 연결되도록 이어 주는 잠재력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연결의 힘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오직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내면성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었다.
− 321쪽 −

중세의 여성이 수도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했다. 중세시대가 어떤 관점에서는 여성에게 속박의 시대도 될 수 있었는데, 수도자의 길은 여성 자신의 해방과 개혁을 위한 유일한 의식적 선택일 수도 있었다. 수도자의 길이란 곧 여성으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학문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요, 사회 통념이던 필부의 길 대신에 충만한 자아실현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요, 세속적 부귀를 꿈꾸는 대신에 청빈한 삶을 통해 종교적 구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356쪽 −

제르트루다는 영성사에서 예수성심의 공경을 처음으로 실천했으며, 후대에 ‘예수성심의 신학자’로 자리를 굳혔다. 그녀가 실천한 대표적 덕목은 순명이다. 순명은 단순히 수녀원의 규칙을 지키고 위계질서에 순종하는 것 그 이상을 말한다. 그녀의 순명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었으며, 영성생활에 완전히 헌신하는 것이었으며, 하느님을 비추는 촛불로 스스로를 불태우는 온전한 겸손으로 나타났다. − 358~359쪽 −

제르트루다의 신비주의는 실천적 영성수련을 통해 구축되었다. 모세에게 하느님은 야훼, 즉 “나는 존재하는 바로 그다”를 의미하는 존재의 하느님이었다. 중세 초기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하느님은 “은총으로 용서하는 분”이라는 용서의 하느님이었다. 제르트루다의 하느님은 오롯이 “너를 사랑하는 분”이라는 사랑의 하느님으로 드러났으며, 영성수련의 핵심 역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관조였다. 그녀는 어쩌면 그 시대가 특별히 필요로 하던 영적 사랑의 힘을 가진 성녀였기 때문에, 그 사랑 덕분에 ‘위대한 제르트루다’로 불리었을 것이다.
− 372쪽 −

특별한 양식의 영성수련은 제르트루다의 신비주의를 내밀한 방식으로 개척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영성수련에 임하는 모든 개별적 영혼은 그리스도와 혼인 관계에 있다는 영적 현실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나아가 제르트루다는 자신을 신랑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한정했다. 그녀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통해 영적 만남을 추구했으며, 이런 혼인 관계를 근거로 내밀하고 관능적인 영적 수련을 감행했다. 제르트루다는 영적 신랑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는 가운데 자기 영혼의 구원을 향해 정진했던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전통에서도 지상의 교회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아름답고 정숙한 신부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비유를 강조해 왔다. −374쪽 −

삶이란 죽어 가는 도상이요, 더구나 참된 삶이란 죽어 가는 도상의 실존을 자각하면서 사는 것이다. “나는 살아 있다”는 실존 자체는 이미 죽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요, 지금 죽어 가고 있는 것만이 진실로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르트루다는 투명한 실존적 명상을 통해 이러한 인생의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체험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녀는 죽음의 명상이 자신의 뜻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겼던 것이다. − 3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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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중심의 중세와 중세철학
전쟁, 이단, 마녀, 신비주의, 예언으로 상징되는 서양의 중세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5세기 말부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인 근세 이전까지의 약 천 년의 기간을 일컫는다. 흔히 ‘천 년의 암흑시대’라 지칭되었던 중세는 그리스 고대라는 문화적 권위와 근세라는 르네상스적 현실성의 중간에 처한 시대로, 그리스 고대의 여파이자 현대를 준비한 과도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세는 고대에 생명을 불어넣어 문화적이고 학문적 가치를 새로이 발굴했고, 근세의 학문과 문화에 기초를 제공하여 현대를 낳은 시대이기도 하다.
중세는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플라톤의 철학학원 아카데미아를 불태우면서 고대 그리스철학을 금지한 시점부터 시작되어 그리스도교 중심적이라는 인상으로 각인되었다.
13세기 들어 중세 그리스도교는 위기를 맞이했다. 11세기부터 계속된 동방과의 십자군전쟁에 더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본토에서 진행된 종교전쟁으로 인해 유럽을 섭렵한 유일 종교라는 칭호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빠진 것이다. 중세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는 계속된 시도 끝에 개혁수도회를 통해, 스콜라철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조화와 풍요를 성취할 수 있었다.
중세철학사를 대표하는 스콜라철학은 말 그대로 ‘학교의 철학’으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논증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학파이다. 12세기 중반에서 13세기 말, 일명 ‘중세 황금기’라고도 부르는 찬란한 철학의 시대를 연 스콜라철학은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페트루스 아벨라르,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로 이어지는 철학의 선구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중세 유럽에 강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스콜라철학은 고대 그리스철학과 아라비아사상, 유대사상의 유입을 학문적으로 소화하는 가운데 ‘대학‘을 설립했으며, 학술 언어인 라틴어를 공용으로 하는 교육의 전형을 성립했다. 대학 교육은 현대 인류 문화의 근간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세계의 교육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중세철학은 스콜라철학으로 대변되는 학교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중세에도 여성철학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그리스 고대나 근세 시대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중세의 심층부를 지탱하던 여성들은 군대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처럼 대학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대신 중세의 여성들은 그에 비견될 만한 수녀원 문화를 이룩했으며, 수녀원 안팎에서 스콜라철학의 일파이기도 한 여성신비주의의 길을 닦은 것이다.

그리스도교 청빈운동과 여성운동가 베긴네의 출현
12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에는 새로운 종교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한창 건설 중이던 중세 유럽의 도시에는 성당의 설교대에 나설 수 없었던 일반 시민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광장의 설교자로 등장한다. 설교자들은 타락한 성직자들과 관리들을 비판하는 가운데 성서에 나오는 ‘사도들의 삶’을 모범으로 설파했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삶으로 돌아가자!” 설교자들은 ‘가난한 그리스도’를 부르짖었으며, 이런 신앙운동은 12세기 그리스도교 청빈운동과 그리스도교 개혁의 계기가 되었다.
청빈운동은 그리스도교의 수도원 공동체로 발전했다. 새로운 공동체는 당시 시대상과는 달리 사회적 차별을 두지 않았다. 청빈운동에는 귀족과 하인, 부자와 빈자,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없었다. 여성들 가운데 독신녀와 유부녀뿐만 아니라 거리의 여인들까지도 이러한 신앙운동에 가담했다.
특히 여성들의 자의식은 분명하면서도 결단력이 있었다. 영성생활을 추구하던 기존의 수도회에도 들어갈 수 없었고 자유로운 학문을 구가하던 대학에도 초대받지 못한 여성들은, 그들 자신을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했다. 바로 여기서 인류 역사에 유래가 없던 베긴네라 불리는 여성들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베긴네는 신심이 깊고 열성적이고 무리를 지어 살아가지만, 아직 공인된 수도회에 속하지 않은 채 활동하는 여성들로, 공인된 수도원 밖에서 신앙과 청빈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베긴네들은 가난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갔다. 그들은 특히 서서히 등장하던 도시를 중심으로 사회복지를 위한 다양한 직업 활동과 구제 활동을 전개했다. 도시에서 활동하던 의식 있는 여성들의 베긴네운동은 여성 수도회가 탄생하는 터전이 되었다. 비로소 여성들도 그들만의 수도원을 만들어 영성적 삶을 추구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중세 여성철학자들의 산실이 되었다.
중세의 여성철학자들은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존재 지평을 영성으로 보고, 영성의 지평에서 신의 절대적 현시성을 직시하고자 했다. 그들은 예언적 현시와 내밀한 체험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갔다. 후대의 철학은 또 하나의 철학적 기류가 될 이 새로운 길을 ‘여성신비주의’라 불렀다. 여성신비주의자들은 현대에 이르러 비로소 여성철학자라는 호칭을 얻었다. 중세의 여성철학자들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중세철학에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극소수의 고귀한 증인들로, 당시의 일반 여성들과는 달리 대체로 수준 높은 교양 교육을 받았으며 찬란한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그들은 독특한 정신적 삶과 저술, 시, 노래 등을 통해 유럽의 종교, 사회, 문화, 정치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발휘했다.
중세 여성철학자들에 대한 소개와 해설은 현대의 성(性) 평등과 여성철학의 문제를 풀어 가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중세 여성철학자 트리오
사랑의 개혁가, 엘로이즈(Hersendis, 1095경~1164경)
엘로이즈는 일드프랑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파리에서 고전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 있던 시토회 계열의 파라클레 수녀원의 원장을 지냈으며,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엘로이즈는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에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역시 수도자이던 아벨라르와의 연애와 결혼으로 아들을 낳았다. 엘로이즈는 역사에 유래가 없는 비극적 사랑으로 당대에 유명세를 겪었다.
수녀원장 엘로이즈는 중세 여성 수도회의 생활방식과 영성생활을 위한 일련의 개혁을 시도했는데, 20세기부터는 억압받던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노력한 여성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1930년대 한 여성운동가는 개혁적이고 근대적인 여인상의 선두로 중세의 엘로이즈를 내세웠다. 이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억압받고 있던 여성들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삶은 800년이 넘도록 사랑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다양한 예술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엘로이즈가 남긴 서한들은 『라틴교부총서』의 아벨라르 편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몇몇 단편이 전해지고 있다. 엘로이즈는 특별한 운명과 삶의 실천으로 인해 사랑의 철학자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철학 속에 아벨라르에 대한 인간적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영성적 사랑을 포함시켰다. 결국 엘로이즈의 삶과 철학은 사랑으로 짜여졌다. 중세에서는 특이하게도 그 사랑의 씨줄은 수녀가 된 엘로이즈요, 날줄은 수도자가 된 아벨라르다. 따라서 아벨라르와의 연관성을 무시하고는 엘로이즈의 삶과 철학을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치유의 예언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is Bingensis, 1098~1179)
성녀로 불리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중세의 가장 위대한 여성 철학자이자 신비가에 속한다. 여성철학자라 불리는 사람 가운데 살아 있는 동안 “독일 예언녀”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받은 아주 드문 경우이다. 『라틴교부총서』에는 힐데가르트의 전 작품이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녀 힐데가르트’라는 저자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힐데가르트는 이미 생전에 세인들로부터 성녀로 추앙을 받고 있었다. 가톨릭교회도 일찍이 1228년 그레고리우스 9세 교황 시기에 그녀를 성인품에 올리기 위한 절차를 시작했으나, 완결하지는 못했다. 현대에 와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2년 힐데가르트를 성인 명부에 올렸으며, 같은 해 10월 7일에는 가톨릭 ‘교회의 보편적 박사’로 추대했다.
힐데가르트는 수녀원 원장이 된 후 다양한 분야에서 걸출한 업적을 쌓았다. 특히 그녀는 역사 이래 여성 저술가로서는 최초로 초기 스콜라철학에 속하는 위대한 작품의 대부분을 후대에까지 남기는 대단한 축복을 받았다. 힐데가르트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의 전통을 받아들여 여성신비주의를 준비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위대한 그레고리오, 베다 베네라빌리스, 마우루스 등의 사상을 수용하여 중세 여성신비주의 시대를 개척했다. 또한 힐데가르트는 음악가였을 뿐만 아니라, 의사, 자연치료사, 의학자, 식물학자, 동물학자로서 자연과학 분야에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힐데가르트는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활발한 설교가로, 시인으로, 당대 위대한 남성 지도자들의 조언자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21세기 들어 그녀는 급속히 부상한 자연치유뿐만 아니라 미술치료, 음악치료, 보석치료의 원조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여성주의자들에게 존경받는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예수성심의 신학자, 헬프타의 제르트루다(Gertrud von Helfta, 1256~1302)
성녀 헬프타의 제르트루다는 중세 독일의 가장 위대한 여성신비가요, 영성 지도자이자 여성철학자이다. 그녀는 독일 여성신비주의의 산실인 헬프타를 대표하며, 예수성심에 대한 공경과 영성을 통해 가톨릭 영성사에서 ‘예수성심의 신학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녀의 영성은 예수성심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체험과 헌신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성녀로서의 제르트루다 축일은 11월 16일이다.
1256년에 태어나 1261년 헬프타의 시토회의 수녀원에 들어간 제르트루다는 베네딕트와 베르나르두스 성인들의 영성을 수련했다. 타고난 재능과 지적 열망으로 일찍부터 라틴어에 능통했으며, 음악, 문학, 문법학, 예술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1281년 1월 27일 그리스도 발현의 신비를 체험했으며, 이후로 중병에 시달리면서도 신비적 내적 상태로 일관된 영성수련을 삶의 마지막까지 강행했다.
제르트루다의 학문적 대표작으로는 자신의 신비체험을 기록한 『신적 사랑의 전령』과 기도문을 동반한 명상법 『영성수련』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제르트루다는 탁월한 라틴어와 독일어 실력으로 성서와 교부들의 문헌과 관련한 다양한 단편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르트루다는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사후 약 삼백 년이 지난 1606년 교황청은 가톨릭교회의 전례에 사용되는 기도, 독서, 찬미가에서 제르트루다를 공경해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그 후 1677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 때 제르트루다의 이름이 『로마순교록』에 기록되었다. 1738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수 세기를 지나면서도 끊임없이 부상하는 제르트루다의 영성을 재평가하여 “위대한 제르트루다”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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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석申昌錫
광주가톨릭대학교와 경북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대학교 철학부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행위론 연구로 1992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3년 교육부·한국학술진흥재단의 재외한국인 초빙교수Brain pool로 귀국하여, 현재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 철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2년에는 독일어 저서 『신의 모상과 인간의 본성』(Chang-Suk Shin, Imago Dei und Natura hominis. Der Doppelansatz der thomistischen Handlungstheorie, Würzburg: Königshausen u. Neumann, 1993)이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의 철학부와 신학부 교재로 선정된 바 있다. 2008년에는 번역·해설서인 프란체스코 삼비아시의 『영언여작』(공역, 2007, 일조각)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의 저서로는 『성공적 행위를 위한 테마철학』(대구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 『씨앗은 꽃에 대한 기억이므로』(도서출판 사남, 2005), 『예술에 대한 철학적 담론』(대구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8) 등이 있다. 역서로는 『토마스 아퀴나스, 그는 누구인가』(분도출판사, 1995), 『스콜라철학의 기본개념』(분도출판사, 1997), 『중세철학이야기』(서광사, 1998), 『철학의 거장들 1』(공저, 한길사, 2001), 『인식의 근본문제』(가톨릭출판사, 2007), 『대이교도대전 1』(분도출판사, 2015) 등이 있다.
연구논문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있어서 학문론의 철학적 근거: 추상과 분리–Expositio super librum Boethii de trinitate, q.5, a.3, c.a.에 대한 문헌반성적 해설–」(『중세철학』 창간호, 1995), 「제일철학의 아포리아」(『철학연구』 제58집, 1996),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철학논총』 제27집, 2002)를 비롯하여 약 70여 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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