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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저자 : 김도훈 ㅣ 출판사 : 웨일북

2019.03.28 ㅣ 319p ㅣ ISBN-13 : 9791188248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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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문학 > 수필 > 국내수필
윤여정, 변영주, 정재승 추천!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 첫 번째 에세이


이 책은 현재 〈허프포스트코리아〉의 편집장 김도훈의 첫 에세이다. 영화 잡지 〈씨네21〉의 취재기자, 패션 잡지 〈긱 매거진〉의 피쳐 디렉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이 책은 그가 17년 동안 글 쓰는 업을 하면서 모은 글 중 가장 아끼는 것들을 솎아내고 엮었다. 솔직한 허영과 부끄러움이 담담하면서도 정제된 방식으로 담겨 있는 그의 단문들은 사람, 영화, 도시, 옷, 물건, 정치까지 소재를 가리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 그는 언제나 시대의 최전선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풍요로웠던 시기, 영화가 새로운 것이던 시기, 온라인 매체가 대안인 시기에 그는 늘 거기에 있었다. 그건 어떤 도시의 속성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은 늘 변화하며, 꼭 그 도시처럼 복잡한, 여러 겹의 레이어로 만들어진다.
그는 외항선 선장이었던 아버지가 사다 준 일본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프라모델을 조립하며, 한국 최초의 세계여행기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보면서 부산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리고 캠퍼스 강당에서 불법 복제된 〈중경삼림〉을 상영하고 영화 잡지가 생겨나던, 그에 따르면 ‘한국 역사상 가장 멋지게 얄팍했던’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내리막을 걷는 지금, 서울에서 중년에 접어드는 중이다. 그가 견뎌온 씁쓸하고 유쾌하고 짜증스럽고 행복한 순간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른스러운 청년의 사려 깊음을, 청년 같은 중년 재기발랄함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재미다.
변영주 감독의 추천사처럼, 이 책의 글들에는 당대의 시공간을 풍부하게 상상하는 매력이 있다. 80년대 마산의 적산가옥 골목과 유년을 떠올리게 하는 친구, 2000년대 영국 브리스틀과 그 시절 청춘의 불안을 봉인한 영화, 일본의 버블경제와 장인정신을 고스란히 머금은 카메라, 체코 여행을 함께 해준 장난감…. 여기에 담긴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다른 시공간을 상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상상이 구체적이게 된다면, 자기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도 작은 낭만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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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서문_위악적이지만 필요한 것이 있다


1부_괜찮음과 안 괜찮음 사이에서
나는 포르쉐를 사야 했다
상담을 받았다
바다는 고양이에게 있었다
마산에서 일어난 일은 마산에 머물러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모은다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인
아버지의 마중
개가 죽었다
어젯밤의 카레 맛
화초 토막 살해범의 눈물
나는 잡지 중독자다
나, 어른은 아니었네
나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
얄팍한 시대의 퇴장
우리는 모두 썸머 홀리데이를 간다
젊음을 봉인한 영화
어쩌겠나, 모두가 다프트 펑크가 될 순 없는 걸
너의 엑스세대 아저씨


2부_품격과 허영 사이에서
인간의 집
장인의 흔적
서울도 희망이 있었다
서울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영화는 잊힌 영화다
베이글을 샀다
쏙독새의 카페에는 쏙독새의 마음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마법 같은 한마디
모두가 커피를 들고 쇼윈도를 들여다봤다
옷방을 정리했다
생수를 샀다
100퍼센트의 택시는 존재한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게 무의미하게


가난하고 섹시하게
폴린 카엘은 남았다
잡지가 사라졌다
금각사를 불태우라


3부_쓸모와 쓸모없음 사이에서
나는 장난감을 사는 중년인다
쓸모 있는 쓸모없는 것들
나는 왜 지방시를 태우지 못했는가
신다 보니 좋았고, 좋다 보니 신었다
티셔츠는 캔버스다
100퍼센트의 면티를 찾는 법
여자 옷을 샀다
스카프는 화려하고 당신은 용감하다
평양의 니콜라스 케이지
신발을 샀다
안경을 샀다
나는 모카포트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커피와 담배는 한때는 커플이었다
비행기에서 마시는 신의 물방울
마지막 음식
물은 물이고 라면은 라면이다


4부_옳음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에게는 더 많은 백플립이 필요하다
나는 모피를 반대하지 않는다
슬픈 쥐를 보았다 1
슬픈 쥐를 보았다 2
동물윤리적으로 사과하기, 동물윤리적으로 겨울나기
나는 비닐백이 아니랍니다
정글짐을 돌려줘
옳은 시위와 틀린 시위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웃기는 농담
진보·보수를 수술로 고칠 수 있을까?
‘월가’ 아닌 우리 모두의 얼굴에 침 뱉기
우주에서 죽은 개

[본 문]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건 내가 꽤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이 책의 몇몇 구절들에서 위로를 받는 독자가 있다면, 그건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라는 건 다소 위악적으로 낭만적인 행위다. 위악적이지만 필요한 행위다. 결국, 우리는 궂은 비 내리는 날 옛날식 카페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듣지 않더라도 끝끝내 낭만이라는 단어를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pp.6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중년의 위기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빌 머레이가 연기하는 주인공 밥은 할리우드 스타다. 그는 위스키 광고를 찍기 위해 도쿄에 간다.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는 20대 여성 샬롯을 만난다. 샬롯은 호텔 바에서 밥에게 묻는다.
“중년의 위기를 겪으시나 봐요. 포르쉐는 사셨어요?”
(중략)
사람에게는 어느덧 중년이 온다. 삶의 여정을 절반 정도 지나온 시점에 잠깐 멈춰서서 스스로 묻는다. 난 성공한 걸까? 이제 나는 저 대사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 어떤 중년은 차를 산다. 젊고 야하고 번드르르한 차를 산다.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건 성공한 삶인가?
pp.17

세상은 우울증으로 넘친다.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다. 그건 그저 우울하기 때문은 아니다. 뇌가 보내는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인 신호다. 그걸 고백한다는 건, 병원을 제발로 찾는다는 건, 자신을 다시 다듬어서 세상과 다시 연결지점을 찾겠다는 의욕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이다. 다정함이 당신의 친구들을 구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다정함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하찮은 인간이다. 하찮은 인간과 인간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을 살아낸다.
pp.26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곳을 선택한 것은 모든 게 옵션이어서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작 고양이 따위가 뛰어놀기 좋은 계단이 있어서 기쁘다며 팔불출 같은 웃음을 짓다니. 게다가 고양이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온 노마드적 삶의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게 분명했다. 에어컨과 벽걸이 TV는 팔아치우고 떠날 수 있지만 , 고양이는 그럴 수 없다. 평생을 업고 가야 하는 존재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아폴로 13호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우주 비행사가 된 기분이었다. ‘휴스턴.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휴스턴.’
pp.31~32

친구의 집도 거기에 있었다. 담쟁이 넝쿨도 거기에 있었다. 정원도 거기에 있었다. 벨도 거기에 있었다. 벨을 누르기만 하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건너편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담배를 세 번 목으로 넘기기도 전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철제 문 뒤로 보였다. 친구였다. 어린 시절보다 좀 더 살이 찌고, 30대 중반이 된 친구가 거기에 있었다.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다.
(중략)
나는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매몰차게 거대한 서울은 피하고 싶은 기억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도시였다. 바다도 없었다. 항구도 없었다. 적산가옥이 모여 있는 동네도 없었다. 친구의 이층집도 없었다. 정원에서 물을 주다가 문득 돌아보는 친구도 없었다. 서울에는 과거를 떠오르게 할 어떤 것도 없었다. 존재하는 건 오직 미래뿐이었다. 미래는 흐릿해서 무서웠다. 과거처럼 선명해서 무섭지는 않았다.
pp.39~40

잡지의 전성기는 지나갔다. 좋은 잡지들은 점점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제 잡지를 보지 않는다. 맹렬한 구독자들로 운영되던 잡지는 이제 광고 수익으로만 운영된다. 일본판 《에스콰이어》도 문을 닫았다. 완전한 폐간이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잡지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수익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잡지도 수익 없이는 버틸 수 없다.
나는 곧 온라인 매체로 옮겼다. 그것이 매체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새 잡지를 주문한 뒤 종이 냄새를 맡으며 안온함을 느낀다. 그건 매우 이율배반적인 행위다. 인간은 이율배반적인 존재다.
pp.76

서울, 남산, 지하철, 서촌의 술집 주인아저씨, 가로수길의 카페 주인장 아가씨, 일요일….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는 않다. 그리고 서울은 진실로 아름답지 않은 것까지 카메라에 속속 담아내는 순간 영화적 무대로서 놀랄 만큼 근사해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 골치 아프고 혼란스럽고 신경질적인 소음과 힘겨운 삶으로 가득한 이 거대한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듯이 말이다.
pp.128

세상에는 수많은 값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우리가 그 모든 아름다운 것을 소유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값을 치르고 내 옷방에 욱여넣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서도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진정으로 스타일리시한 것인지를 배운다.
pp.151


사람들은 종종 스포츠 세계가 순결한 땀과 훈련과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가득한 인간 정신의 성전으로 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스포츠는 순결하지 않다. 올림픽은 순결하지 않다. 하얀 아이스링크도 순결하지 않다. 우리에겐 여전히 더 많은 백플립이 필요하다.
pp.263

한국 역시 뉴트리아 박멸을 외치고 있지만 아마도 완벽한 박멸은 불가능할 것이다. 붉은귀거북, 황소개구리, 배스, 블루길 등 인위적으로 한국에 들여온 외래종 중 완벽하게 멸종하거나 박멸된 동물은 없다. 다들 어떻게든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들여오고 우리가 때려잡는 뉴트리아 역시 그렇다. 박멸과 멸종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p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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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상한 방식으로 균형을 잡는다.”
위태로운 도시에서의 삶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어떤 종류의 낭만을 말하다


“나는 내 글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성격의 인간은 아닌 것이 틀림없다. 여전히 나는 책을 낸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에 있는 몇몇 글들을 자아도취적으로 아낀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내 삶의 몇몇 조각들을 있는 그대로 오려내어 피식피식 웃듯이 던진 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은 괜찮음과 안 괜찮음 사이에서, 품격과 허영 사이에서, 쓸모와 쓸모없음 사이에서, 옳음과 현실 사이에서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신경질적인 도시를 견뎌낸 기록에 가까울 것이다.”
_서문 중에서

도시를 잘 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자기만의 공간, 미래에 대한 계획, 애정을 쏟을 대상, 경제적인 안정 등. 하지만 도시는 그 자체로 조건이다. 변화하는 환경이라는 조건이다. 잘 살고 싶은 마음과 환경이 꼭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도무지 괜찮지가 않다. 도시는 완벽한 휴양지가 아니다. 완벽하게 무의미하게 살 수 없다.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아스팔트에 발붙이고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러나 내리막을 걷는 사회에서 우리의 마음에는 냉소와 절망, 무관심이 자리하기 쉽다. 마음의 크기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작아지고, 남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솔직하기가 점점 어렵다. 이렇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우리의 마음은 뒤틀린 욕망의 산물이다. 그런데 공허한 마음을 쉴 새 없이 메우는 위로는 너무 쉽거나 때로 무책임하다. 욕망을 긍정하지 않고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건 가능한 일일까? 오히려 이 욕망의 도시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실은 더 근사한 삶을 욕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괜찮다는 위로보다 필요한 건 한 줌의 낭만이다. 여기, 고양이와 에비앙을 나눠 마시는 작은 허영을 부리고, 그토록 사랑하는 라이더 재킷을 윤리적 패션이라는 미명하에 참아내며, 쓸모없는 장난감이 갖는 쓸모 있음을 이야기하는, 말하자면 ‘도시적인’ 낭만이 있다. 그건 소비사회의 세속적 욕망을 긍정하면서도 현실에 잠식당하지 않는 어떤 틈을 열어젖힌다. 곳곳에 부끄러움과 자아도취가 배어있는, 무엇보다 솔직한 글에는 욕망의 도시에 발붙이고도 균형을 잃지 않고, 시시한 어른으로 늙지 않으려 삶을 열심히 살아낸 흔적이 가득하다.

“김도훈은 당대의 냄새를 맡을 줄 안다.”
늘 변화의 최전선에 서있는 사람의 취향과 속내,
솔직한 허영과 자조적 유머를 엿보다


이 책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의 첫 번째 에세이다. 그는 영화 잡지 〈씨네21〉의 취재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패션 잡지 〈긱 매거진〉의 피쳐 디렉터를 거쳤다. 뉴미디어 관련 인터뷰나 영화 GV 현장에서도 볼 수 있는 그는 〈엘르코리아〉, 〈디 에디트〉, 〈빌리브〉 같은 라이프스타일 잡지나 공간 매거진부터 〈한겨레21〉 같은 시사 주간지에도 자주 이름을 올린다. 주변에서는 그를 일 중독자라고 말한다. 자신은 잡지 중독자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온갖 매체에 등장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일 중독자 맞다. 잡지 중독자도 맞다.

2004년부터 글 쓰는 업을 해온 그의 글을 많은 매체가 계속해서 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글로 다룰 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거대담론이 저물고 영화가 새로운 담론을 만들던 시기에는 영화 잡지에 있었다. 옷을 너무나 사랑하는 그는 가장 빠르게 변하는 분야 중 하나인 패션 잡지에도 몸을 담았다. 온라인 매체가 대안으로 떠오르던 2014년부터 지금까지 대표적인 뉴미디어의 편집장으로 있다.
사람, 영화, 도시, 옷, 물건, 정치까지 그가 글로 다루는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 정제된 단문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쓴다. 이 책에 솎아내고 엮은 글들은 그가 17년 동안 써온 글 중 가장 아끼는 것들이다. 매체에 기고하지 않고 남겨두었던 개인적 에피소드들도 있다. 거기엔 솔직한 허영과 자조적 유머가 있다. 세련된 취향을 쌓아올린 순간의 감각들이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건 늘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의 속마음을, 그 특별한 상태들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는 것이다.

정제된 단문에는 어른스러운 청년의 사려 깊음이,
청년 같은 중년의 재기 발랄함이 있다.


김도훈은 외항선 선장이었던 아버지가 사다 준 일본 장난감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거나 프라모델을 조립하거나 썩은 바다에서 게를 잡으며 유년을 보냈다. 한국 최초의 세계여행기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보면서 언젠가 바다를 건너겠다는 꿈을 꾸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캠퍼스 강당에서 불법 복제된 〈중경삼림〉을 상영하고 영화 잡지가 생겨나던, 그에 따르면 ‘한국 역사상 가장 멋지게 얄팍했던’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지금, 신경질적인 소음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그에 따르면 ‘착실하고 성실하게’ 중년에 접어드는 중이다. 하지만 편집자가 보기에 아무래도 ‘착실한 중년’이 되기엔 틀린 것 같다. 이 글이 그 증거다.

“친구의 집도 거기에 있었다. 담쟁이 넝쿨도 거기에 있었다. 정원도 거기에 있었다. 벨도 거기에 있었다. 벨을 누르기만 하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건너편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담배를 세 번 목으로 넘기기도 전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철제 문 뒤로 보였다. 친구였다. 어린 시절보다 좀 더 살이 찌고, 30대 중반이 된 친구가 거기에 있었다.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다. (중략)
나는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매몰차게 거대한 서울은 피하고 싶은 기억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도시였다. 바다도 없었다. 항구도 없었다. 적산가옥이 모여 있는 동네도 없었다. 친구의 이층집도 없었다. 정원에서 물을 주다가 문득 돌아보는 친구도 없었다. 서울에는 과거를 떠오르게 할 어떤 것도 없었다. 존재하는 건 오직 미래뿐이었다. 미래는 흐릿해서 무서웠다. 과거처럼 선명해서 무섭지는 않았다.”
- 〈1부_괜찮음과 안 괜찮음 사이에서〉, ‘마산에서 일어난 일은 마산에 머물러야 한다’ 중

이 글에서는 80년대 항구도시 마산의 적산가옥 골목과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친구가 등장한다. 그러나 자신은 결국 선명해서 무서운 과거로부터 흐릿해서 무서운 미래로 도망쳐버린다. 확실한 과거의 공포와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 선택지가 앞에 있을 때, 사람은 보다 견디기 편한 쪽을 택하게 마련이다. 그에게는 불확실함 쪽이 견디기 편했던 모양이다. 불확실함 속에서 감각하는 안정. 그건 거대한 도시의 속성과도 잘 포개진다.

도시는 늘 변화하고 많은 게 불확실하다. 도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너무 복잡한 것들로 가득하다. 그런 채로 작동한다. 그래서 도시에 산다면 어느 정도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외로움도 필연적이다. 도시를 살아간다는 건 이 모든 걸 견뎌낸다는 것이다.
김도훈은 도시를 잘 견디는 방법을 안다. 그는 도시를 닮았다. 복잡한 도시만큼 복잡한, 이율배반적인 존재임을 받아들인다. 내면에 여러 겹의 레이어가 쌓여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런 사람은 도저히 착실한 중년이 될 수가 없다. 언제고 어른스러운 사려 깊음을, 청년 같은 재기발랄함을 오갈 것이다.

추천사

“김도훈은 내 친구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우리 때는 글을 쓰면 문학이라야 인정을 했고 김도훈이 쓰는 글은 잡문이라고 했을 것이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젊은 친구들이 잡문을 쓴다. 김도훈은 내 큰 아들과 같은 나이다. 나는 재밌게, 때로는 놀라며 내 아들의 마음을 엿보는 마음으로 김도훈의 글을 읽는다. 그렇게 내 아들뻘 되는 친구들과 소통한다.”
- 배우 윤여정

“당대의 ‘공기’를 분석하거나 읽는 일엔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공기를 느끼는, 이를테면 냄새를 맡는 건 실은 재능이다.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의 글은 그래서 당대를 다양한 시선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김도훈의 글이 그렇다. 거리의 작은 몸짓에서 징후를 느끼고 그 징후를 선언하듯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징후들과 엮고 짜보며 알록달록한 문장의 테피스트리를 만든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재밌고 유쾌하며 서늘하다.”
- 영화감독 변영주

“김도훈 편집장이 책을 냈다. 〈씨네21〉에 있을 때부터 대체 불가능한 글쓰기를 보여주었던 그의 글들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기회다. 역시나! 이 책에는 매력적인 저자의 개성과 취향, 사유와 통찰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일상을 솔직하게 공유하면서도 그에 대한 사유 또한 빼곡히 채워진 그의 글에는 다음 세대의 재기발랄함과 우리 세대의 사려 깊음이 공존한다. 조심하시라. 이 책을 읽으면 김도훈을 사랑하게 된다. 영화와 패션과 여행과 고양이를 사랑하는 40대의 힙하고 쿨한 청년을.”
- 뇌과학자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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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마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영국 브리스틀로 건너가 보조교사를 했다. 귀국 후 영화 잡지 〈씨네21〉에 취재기자로 입사해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가, 교통사고처럼 고양이 한솔로와 사랑에 빠져 서울에 눌러살고 있다. 패션 잡지 〈긱 매거진〉 피쳐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으로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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