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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사람이다-그 집이 품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삶
저자 : 한윤정 출판사 : 인물과사상
2017.12.26 | 361p | ISBN-13 : 978895906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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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개인과 가족의 삶이 담긴 내밀한 휴식 공간이자, 개인의 사고와 이력을 대변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알려면 집을 보면 된다. 거기에는 그들의 일, 취미, 취향, 관계, 가치관 등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살아온 시간과 경험, 거기서 건져올린 추억이 축적된 장소이기도 하다. 각자의 얼굴, 지문만큼이나 독특하고 유일한 개성을 지닌 공간이 집이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은 사람을 지배한다. 여기 자신만의 개성적 공간을 소중하게 가꿔온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집은 자아의 연장이다.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많은 시간 동안 집에 대해 생각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소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좋은 조건의 집 대신 자신이 끌리는 집을 택했고, 원하는 모습의 집으로 만들기 위해 깊이 고민하고 공들여 고쳤으며 정성껏 가꿔왔다. 집이 자신의 삶을 담는 그릇이 되기를 받아들여 집과 더불어 대화하고 집에서 작업하고 즐기는 직주(職住) 일체형 생활을 한다. 이들은 자아의 확장인 집에 많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의 집에 고유한 개성을 부여한 이들은 정주자(定住者)처럼 보이는 여행자다. 진부한 통념을 거부하며 삶에 대한 호기심, 변화의 희망을 집이라는 그릇에 담는다. 집의 용도와 형태를 구상함으로써 삶의 내용을 디자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집은 그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자극과 영감을 준다. 좋은 집은 개인에게 삶을 성찰하고 경신(更新)하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를 넘어 사회적으로 점점 주목받고 있다. 개발연대에 대규모로 똑같이 지어진 집들은 이제 낡고 흉물스럽다. 그러나 경제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재개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불도저식 건설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동시에 시간이 쌓인 장소를 보존·개조함으로써 개성적 미감을 확보하려는 도시 재생이 화두가 되었다,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일까? 이 책에 소개된 집들을 통해 좋은 집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첫째, ‘소박한 집’이다. 필요한 것은 있고 불필요한 것은 없는 집에 들어섰을 때 ‘정말 좋은 집’이라는 감탄이 흘러나온다. 둘째, ‘시간이 쌓인 집’이다. 오래된 집에는 풍성한 이야기가 있다. 오래된 집에서 영감을 얻은 이들은 집을 매개로 과거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찾아나간다. 셋째, ‘예술이 태어나는 집’이다. 예술가가 사는 집, 그들이 작업하는 공간은 늘 흥미롭다. 넷째, ‘공동체를 향해 열린 집’이다. 자신의 사적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이웃, 사회와 더불어 지식과 경험, 무엇보다 즐거움을 나누려는 이들의 집에는 환대라는 소중한 가치가 들어 있다.
좋은 집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사실 구분하기 어렵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집의 내력과 주인의 삶이 만나면서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가꿔진 공간, 즐거움과 영감을 제공하고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공간. 좋은 집은 이렇게 정의된다. 그러나 좋은 집을 갖는 데는 투자와 수익이라는 측면에 눈을 감아야 하고, 공간을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따른 노력과 노동도 만만치 않다. 외부인의 시선에 포착된 낭만적 가치만으로 포장되지 않는 고통이 숨어 있다. 그런 포기와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책에 소개된 집들은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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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책머리에 · 6

제1장 소박한 집
그 남자의 앉은뱅이 도란도란 토담집 : 환경운동가 차준엽의 ‘토담집’ · 18
낭비하지 않는 절박함, 시를 닮은 그 여자네 집 : 시인 조은의 ‘사직동 한옥’ · 32
아무런 사치없이 사치스런, 창밖 살구꽃 피는 ‘목수의 집’ : 건축가 김재관의 ‘살구나무집’ · 46
오봉산에는 봄꽃 편지가 피고, 마루에는 햇빛이 졸다 갑니다 : 영문학자 이종민의 ‘시골집’ · 60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을 지켜준 ‘균형의 방’ : 소설가 조경란의 ‘봉천동 서재’ · 74
추억도 물건도 그곳에서는 다시 태어난다 : 일러스트레이터 이담·김근희 부부의 ‘속초 작업실’ · 86

제2장 시간이 쌓인 집
아들의 손끝에서 아버지의 아흔 넘은 고택은 작품이 되었다 : 설치미술가 최인준의 ‘자이당’ · 102
100년 세월이 켜켜이 쌓인 집, ‘회색의 사진가’는 빛바랜 미에 끌렸다 : 사진가 민병헌의 ‘군산 근대가옥’ · 116
바닷바람 피해 움푹 숨은 집, 오래 낡아온 역사가 좋았다 : 역사학자 박옥걸의 ‘보길도 고택’ · 132
한국도 일본도 담긴 그 집에 ‘그녀의 역사’가 깃들었다 : 저널리스트 도다 이쿠코의 ‘인천관동갤러리’ · 146
천재 건축가의 ‘이상한 설계’, 누이는 그 불편함이 좋았다 : 의상디자이너 김순자의 ‘고석 공간’ · 160
‘철물점’ 주인의 손 닿은 달동네, 달 떴네 : 철물디자이너 최홍규와 ‘이화동 성곽마을’ · 174

제3장 예술이 태어나는 집
바람 소리 머물다 가는 집, 그녀의 노래도 깊어간다 :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의 ‘제주도 소길리 집’ · 190
아이들이 떠난 폐교에는 ‘그림 아이들’이 산다 : 화가 김차섭·김명희 부부의 ‘폐교 작업실’ · 204
그가 빚은 집은 밝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 조각가 최종태의 ‘연남동 작업실’ · 218
그 집에서 배운 흙과 풀의 위안 : 가든디자이너 오경아의 ‘정원학교’ · 232
뜨거운 가마 앞 겸손한 기다림, 그렇게 그의 그릇에 삶이 담긴다 : 사기장 신한균의 ‘신정희요’ · 248
한 뼘 무대 위에 단 한 명의 배우, 온 세상을 펼친다 : 배우 심철종의 ‘한평극장’ · 262

제4장 공동체를 향해 열린 집
세상에 마모되지 않을 시, 사람, 여백을 찾다 : 독문학자 전영애의 ‘여백서원’ · 278
‘책장수’는 고향 동네 대나무숲을 사무실로 옮겨왔다 : 나남출판 회장 조상호의 ‘사무실’ · 292
인왕산 아래 술 빚는 집, 멍석 깔고 나누는 잔에는 흥이 넘친다 : 전통주 명인 박록담의 ‘내외주가’ · 306
공들여 요리한 음식, 손님은 그 맛에 길들여진다 : 셰프 최미경의 ‘8 스텝스’ · 320
음악이 아날로그의 온기로 마음을 채운다 : 한의사 최윤욱의 ‘까망까레’ · 334
남산 아래 골목마다 ‘문화’가 피었습니다 : 핸즈BTL 대표 박동훈의 ‘필동 스트리트뮤지엄’ · 346

[본 문]

한윤정

서울에 남은 일제시대 적산가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그 집을 부수고 점포가 달린 살림집을 짓기 위해 늘 백지에 설계도를 그리셨다. 공간에 대한 흥미는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방문했던 작가와 예술가들의 개성 가득한 집과 작업실을 보면서 더욱 커졌다. 집이 자아의 연장이란 생각에서 집과 닮은 사람, 사람과 닮은 집을 찾아다니는 취재를 시도했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2016년까지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한국 영화의 초국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과 영화, 예술·예술가 지원 정책, 생태적 사회를 위한 예술과 미디어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있다. 『명작을 읽을 권리』(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란 책을 냈다.

사진 박기호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귀국해 20년 동안 한국에서 『비즈니스위크』, 『포천』, 『타임』, 『포브스』 등 세계적 잡지와 다양한 대기업 광고 사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작업했다. 2007년 인물 사진에 오브제를 덧붙여 3차원적 사진을 시도한 ‘Photography & Texture’ 연작으로 첫 개인전을 가진 뒤, 다시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작품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전역의 빈 점포를 촬영한 ‘Everything must go’ 연작을 발표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가지고 철거되는 재개발 지역의 빈집들을 4년째 촬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송도국제캠퍼스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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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자신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집은 각자 마음속에 있다”


집은 개인과 가족의 삶이 담긴 내밀한 휴식 공간이자, 개인의 사고와 이력을 대변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알려면 집을 보면 된다. 거기에는 그들의 일, 취미, 취향, 관계, 가치관 등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살아온 시간과 경험, 거기서 건져올린 추억이 축적된 장소이기도 하다. 각자의 얼굴, 지문만큼이나 독특하고 유일한 개성을 지닌 공간이 집이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은 사람을 지배한다. 여기 자신만의 개성적 공간을 소중하게 가꿔온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집은 자아의 연장이다.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많은 시간 동안 집에 대해 생각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소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좋은 조건의 집 대신 자신이 끌리는 집을 택했고, 원하는 모습의 집으로 만들기 위해 깊이 고민하고 공들여 고쳤으며 정성껏 가꿔왔다. 집이 자신의 삶을 담는 그릇이 되기를 받아들여 집과 더불어 대화하고 집에서 작업하고 즐기는 직주(職住) 일체형 생활을 한다. 이들은 자아의 확장인 집에 많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의 집에 고유한 개성을 부여한 이들은 정주자(定住者)처럼 보이는 여행자다. 진부한 통념을 거부하며 삶에 대한 호기심, 변화의 희망을 집이라는 그릇에 담는다. 집의 용도와 형태를 구상함으로써 삶의 내용을 디자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집은 그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자극과 영감을 준다. 좋은 집은 개인에게 삶을 성찰하고 경신(更新)하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를 넘어 사회적으로 점점 주목받고 있다. 개발연대에 대규모로 똑같이 지어진 집들은 이제 낡고 흉물스럽다. 그러나 경제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재개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불도저식 건설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동시에 시간이 쌓인 장소를 보존·개조함으로써 개성적 미감을 확보하려는 도시 재생이 화두가 되었다,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일까? 이 책에 소개된 집들을 통해 좋은 집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첫째, ‘소박한 집’이다. 필요한 것은 있고 불필요한 것은 없는 집에 들어섰을 때 ‘정말 좋은 집’이라는 감탄이 흘러나온다. 둘째, ‘시간이 쌓인 집’이다. 오래된 집에는 풍성한 이야기가 있다. 오래된 집에서 영감을 얻은 이들은 집을 매개로 과거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찾아나간다. 셋째, ‘예술이 태어나는 집’이다. 예술가가 사는 집, 그들이 작업하는 공간은 늘 흥미롭다. 넷째, ‘공동체를 향해 열린 집’이다. 자신의 사적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이웃, 사회와 더불어 지식과 경험, 무엇보다 즐거움을 나누려는 이들의 집에는 환대라는 소중한 가치가 들어 있다.
좋은 집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사실 구분하기 어렵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집의 내력과 주인의 삶이 만나면서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가꿔진 공간, 즐거움과 영감을 제공하고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공간. 좋은 집은 이렇게 정의된다. 그러나 좋은 집을 갖는 데는 투자와 수익이라는 측면에 눈을 감아야 하고, 공간을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따른 노력과 노동도 만만치 않다. 외부인의 시선에 포착된 낭만적 가치만으로 포장되지 않는 고통이 숨어 있다. 그런 포기와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책에 소개된 집들은 더 아름답다!

소박한 집

환경운동가 차준엽은 낡은 농가의 벽에다 물에 갠 흙을 몇 겹씩 손으로 발라 토담집으로 개조하는 과정을 통해 “환경운동을 문화인류학적으로 구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흙 위에다 밀가루 풀을 바르고 천장에는 한지로 도배한 게 내장의 전부다. 전국 어떤 황토집, 황토찜질방도 이처럼 접착제를 전혀 쓰지 않는 건축은 불가능하다. 숨 쉬는 흙벽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있을 것은 다 있고 없을 것은 없는 토담집에서는 처음에는 놀라 두리번거리게 되지만, 이내 자신의 몸처럼 익숙하다. “흙냄새는 위, 나무 냄새는 간, 지푸라기 냄새는 기와 혈, 나무 타는 냄새는 뇌파를 안정적으로 순환시켜준다”는 게 차준엽의 설명이다. 이 집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무엇인지, 최소한의 소비로 영위하는 일상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천연 재료를 사용해 쇠똥구리가 온몸으로 흙을 굴려 집을 짓듯 완성된 토담집은 자연이 개발이나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친구이자 안식처라는 그의 철학을 대변한다.
20대 중반부터 시를 써왔던 조은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벼랑에서 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 조은이 오랫동안 살아온 작은 한옥은 대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그의 벼랑이다. 이 집은 자그만 체구의 시인에게 벼랑 위의 삶을 지탱하는 둥지가 되어주었다. 그의 언어와 생활처럼 허실이 하나도 없는 집이다. 조은의 시어는 단정하고 옹골차다. 화수분처럼 무수한 단어 가운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골라 쓴다. 한때 이곳은 주인과 친한 문화예술계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시인, 소설가, 화가, 건축가, 기자, 편집자…….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새벽까지 놀다갔다. 왜 그런지는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단박에 알 수 있다. 작은 독채는 어릴 때 소꿉장난을 하던 비밀장소처럼 아늑한 흥분을 준다. 비밀 없는 이웃의 사연은 소설가들을 매혹시켰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은 중앙동을 거쳐 지금은 은천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봉천동이 가난한 동네라는 선입견을 준다고 해서 중앙동이란 무덤덤한 이름을 얻었고, 다시 도로명 주소가 덧씌워졌다. 이렇게 지명이 바뀌는 동안에도 소설가 조경란은 여전히 자신이 태어나 자란 ‘봉천동’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가 지은 3층짜리 다세대주택의 옥탑방에서 2층으로 서재를 옮겼을 뿐, 자신의 삶이 된 많은 책장과 책상을 끌어안고 문학과 함께 살아간다. 그의 서재는 그의 삶과 생각이 농축되어 있는 방이다. 그는 옥탑방과 현재 작업실을 꾸려온 과정을 소설로 쓰기도 했다. 자기 방에 상을 편 채 쭈그리고 앉아 쓴 소설로 등단한 직후, 원래 막냇동생이 쓰던 옥탑방으로 옮겨갔다. 그는 이 ‘균형의 방’에서 조금씩 아껴가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시간이 쌓인 집

광주광역시 남구 양촌길의 최승효 고택 자이당(自怡堂). ‘스스로 기쁨을 짓는 곳’이라는 이곳의 이름은 최승효·최인준 부자의 삶을 대변한다. 두 사람에게 집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예술 자체였다. 자이당은 아버지의 분신이자 그가 남긴 예술 애호의 결과물이었다. 아버지가 30여 년간 거주했던 집은 다시 생활의 때가 묻어 여염집으로 변한 상태였다. 최인준은 이 집 자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꾸미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꿈꾸었던 대로 문화예술의 사랑방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자이당이 주는 즐거움은 두 가지에서 온다. 첫째는 자이당 자체이고, 둘째는 자이당을 둘러싼 정원, 즉 최승효와 최인준 부자가 가꾼 3,000여 평의 환경예술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저널리스트 도다 이쿠코에게 인천 개항지구의 90년 된 일본식 목조주택은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렸던 친구처럼 느껴졌다. 일본에서 일본사를 전공한 뒤 한국에서 한국근대사를 공부하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사와 조선족의 역사를 취재했던 그는 동아시아의 역사가 중첩된 장소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 집의 원형을 찾아주었다. 그에게 인천은 동아시아의 축소판이었다. 2015년 초 문을 연 인천관동갤러리의 첫 전시는 집수리 과정을 소개한 ‘일식주택 재생 프로젝트’전이었다. 인천관동갤러리는 출판사 토향의 사무실, 조선족 사진자료 아카이브, 아트숍, 게스트하우스이자 일본 주택의 원형을 보존하는 전시장이다. 광복 70주년이던 그해 8월 15일 무렵에는 인천근대박물관과 함께 ‘자료로 보는 일본침략사’전을 열기도 했다.
건축가 김수근은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경동교회, 국립과학관 등을 짓던 대가였다. 그런 그가 타계하기 3년 전 서울 명륜동 주택가 80평 남짓한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살림집을 설계했다. 오롯이 누이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 집의 주인은 김수근의 바로 손위 누나인 의상디자이너 김순자와 그의 부군인 박고석 화백이다. 처음에는 김수근이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이 집을 지으면 반드시 비가 새고 불편하니까 아파트나 다른 집을 얻으라고 했다. 역시나 창이 많아서 춥고 설계를 따르지 못하는 시공 때문에 비가 샜다. 가파른 원형 계단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려야 했다. 그 집에서 김순자는 30년 넘게 살고 있다. 집을 지을 당시 10년간 말려 조금의 뒤틀림도 없는 나무는 이제 구할 수도 없다. 집은 고급스럽기보다 곡진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지은 건축이 갖는 진정성이다.

예술이 태어나는 집

집을 옮김으로써 생활을 바꾸고 거기에서부터 자신을 변화시킨 사람으로 가수 장필순을 들 수 있다. 그는 외형적인 데만 집중하고 너무 빠르게 변하는 음악시장에 회의를 느껴 제주도로 훌쩍 떠났다. 음악과의 단절을 택한 셈이지만, 헌집을 고치고 텃밭을 가꾸고 유기견들을 키우면서 하우스레코딩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찾았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중산간의 마당 넓은 집에서 제2의 음악인생이 시작되었다. 집은 자연, 이웃, 친구를 만나면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 안식처일 뿐 아니라 작업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일상과 밀착된 작업 속에서 그가 추구하는 음악의 본질은 한층 또렷해졌다. 덜 먹고 덜 입는 대신 자신의 환경에서 좋은 소리와 말로 음악을 만들어 행복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음악으로 다른 이를 위로하는 것. 그것이 ‘소길리의 방식’이다.
집이 비단 물리적 실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들려준 이는 화가 김차섭과 김명희였다. 뉴욕 맨해튼 소호의 로프트(Loft)와 강원도 산골의 폐교를 절반씩 오가는 삶을 꾸리는 그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은 집을 그리워하고 마음이 강한 사람은 모든 곳이 집이라고 하고 깨달은 사람은 어느 곳도 집이 아니라고 한다. 집은 각자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그림은 집과 마찬가지로 현실과 맞닿은 상상을 불러낸다. 김명희에게 폐교는 예술에 몰두하게 해준 고마운 장소다. 이곳에 온 뒤 ‘왜 사는가’라는 의문에 부딪혔던 그는 그리운 얼굴을 하나씩 칠판으로 불러왔다. 노마드로 살아온 그들에게 집이 갖는 의미 역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다.
정원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가든디자이너 오경아에게 흙과 식물은 무엇보다 따뜻한 위안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1년 간격으로 여의고 마음의 고통에 시달렸으며,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16년간 계속해온 방송작가 생활은 보람과 함께 극심한 마감 스트레스를 안겼다. 오경아는 38세이던 2005년 영국 에식스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 왕립식물원인 큐가든의 인턴 정원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고,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 2015년에 세운 ‘오경아의 정원학교’는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인 강원도 속초시 중도문길의 오래된 마을에 있다. 오경아는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서 여전히 고민이 많다. 정원학교가 아름다운 정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지혜를 주는 한편 자신과 가족에게 생활의 방편으로 존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이곳을 정원문화종합센터로 만드는 것이다.

공동체를 향해 열린 집

전영애 교수는 여백서원의 존재 이유로 좋은 책의 보관과 함께 좋은 사람들의 보존을 든다. 제자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 외국인들 누구에게나 여백서원은 열려 있다. 그들이 험난한 세상에서 마모되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여기에 오면서 제자들과 시작한 오마토(5월 마지막 토요일), 시마토(10월 마지막 토요일) 모임 외에 서원을 지으면서 불특정 다수를 위한 월마토(매월 마지막 토요일) 모임을 만들어 서원을 공개한다. 여백서원에는 함께 모여 공부할 수 있는 큰 방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서재, 왼쪽에는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다락방에는 20인분 침구를 넣어두었다. “제 공식 직함이 ‘3인분 노비’입니다. 옛날에 이만한 서원을 지키려면 노비가 3명은 있어야 했다네요. 나만 위해서는 이렇게 못하지요. 아끼는 이들을 위한 일이니까 뭐든 했습니다.” 그는 서원지기로 여생을 보낼 참이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30여 년간 우리 술을 연구해온 전통주 전문가다. 인왕산 바위가 바로 올려다보이는 골목길 안에 숨어 있는 내외주가는 박록담 소장이 아내 박차원과 함께 운영하는 주점이다. 내외주가는 지은 지 50년이 가깝지만 여전히 튼튼한 양옥에다 넓은 마당이 자랑이다. 나무와 화초가 자라고 인왕산을 올려다볼 수 있는 정원에서 날씨가 좋으면 테이블이나 멍석을 펴놓고 손님을 맞는다. 그는 80여 종의 문헌에 부분적으로 수록된 술 이름과 주방문을 토대로 일일이 실험해보면서 자신만의 전통주 레시피를 만들었다. 기록으로 남은 전통주가 520여 종, 여기에 같은 술이라도 빚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 것까지 합쳐 1,000여 가지 주방문이 나왔다. 내외주가의 문을 열고 처음 맞은 삼월삼짇날, 많은 사람이 모여 술과 안주를 음미하고 옛 전통을 잇는 시사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단오(5월 5일), 칠석(7월 7일), 9월 9일, 11월 11일에도 시사회가 이어진다.
최미경은 평범한 주부에서 시작해 요리 코디네이터, 쿠킹클래스 강사, 셰프, 사업가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 요리를 누구에게 먹일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누구에게 주든지 내 자식을 먹이는 마음으로 요리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2000년대 중반부터 한 탈북자 학교에서 급식봉사를 해왔다. 아이들은 처음에 못 먹는 음식이 많았지만 봉사자들이 준비해오는 다양한 요리에 차츰 길들여졌다.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요리를 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배운 것도 이런 경험을 통해서다. 그의 집은 과거와 현재, 세련됨과 소박함이 공존한다. 서민들이 모여 살던 다세대주택의 흔적은 특별한 개성이 되었다. 새로 산 명품이 풍기는 돈 냄새가 아닌, 오래 써온 명품이 갖는 품격이라고 할까. 그는 성북동 8 스텝스의 1층 창가 테이블에 앉아서 건너편 서울성곽을 바라보는 시간을 좋아한다. ‘8 스텝스’는 삼청동 식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10개인 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10 스텝스에 이르기 위해 늘 노력하는 자세, 그것이 ‘8 스텝스’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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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서울에 남은 일제시대 적산가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그 집을 부수고 점포가 달린 살림집을 짓기 위해 늘 백지에 설계도를 그리셨다. 공간에 대한 흥미는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방문했던 작가와 예술가들의 개성 가득한 집과 작업실을 보면서 더욱 커졌다. 집이 자아의 연장이란 생각에서 집과 닮은 사람, 사람과 닮은 집을 찾아다니는 취재를 시도했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2016년까지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한국 영화의 초국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과 영화, 예술·예술가 지원 정책, 생태적 사회를 위한 예술과 미디어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있다. 『명작을 읽을 권리』(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란 책을 냈다.

사진 박기호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귀국해 20년 동안 한국에서 『비즈니스위크』, 『포천』, 『타임』, 『포브스』 등 세계적 잡지와 다양한 대기업 광고 사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작업했다. 2007년 인물 사진에 오브제를 덧붙여 3차원적 사진을 시도한 ‘Photography & Texture’ 연작으로 첫 개인전을 가진 뒤, 다시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작품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전역의 빈 점포를 촬영한 ‘Everything must go’ 연작을 발표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가지고 철거되는 재개발 지역의 빈집들을 4년째 촬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송도국제캠퍼스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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