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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
저자 : 윌리엄사우더 ㅣ 출판사 : 에코리브르 ㅣ 역자 : 김홍옥

2014.04.14 ㅣ 630p ㅣ ISBN-13 : 978896263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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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조사 작업을 거쳐 격조 있게 써내려간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를 읽어보면 카슨이 본시 수줍은 성격이지만 자기 일에서만큼은 열정적이었으며, 그녀를 열렬히 환호한 문단 세계보다는 자연 세계에 머물 때 한결 편안함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윌리엄 사우더는 카슨이 도로시 프리먼과 나눈 낭만적 우정에 대해서도, 1964년 암으로 죽어간 정황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의 참신하면서도 비범한 전기는 20세기의 위대한 개혁가 가운데 한 사람인 레이첼 카슨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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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부 수중 세계
01 “카슨 양의 책”
02 한낮의 태양처럼 빛나는
03 생물학으로
04 헨리 윌리엄슨과 깊은 바다
05 이 아름답고도 숭고한 세계
06 큰 승리를 거둔 작가

2부 침묵의 봄
07 도로시
08 영원한 바다
09 불타는 지구
10 부수적 피해
11 고조선과 저조선

후기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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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4일, 50주기를 기념하여 새로 쓴 환경운동의 어머니 “레이첼 카슨”의 전기!
과학적 엄밀함을 바탕으로 시적인 글쓰기로 독자를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작가,
철저한 문헌 조사와 수많은 전문가와의 편지 교환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는 집요한 연구자.


레이첼 카슨은 바다를 사랑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비롯해 바다의 신비를 다룬 세 권의 책을 집필했다. 하지만 이 겸손한 생물학자가 우리와 자연 세계의 관계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네 번째 저작 《침묵의 봄》을 통해서였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합성 살충제를 엄청난 기세로 제조하고 사용하던 1950년대 말이었다. 이 같은 화학물질의 집중포화를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살충제 DDT였고, DDT 개발자〔파울 뮐러(Paul Muller)〕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발진티푸스·말라리아 같은 인간 질병을 매개하는 곤충과 작물에 해를 끼치는 해충을 제거하는 데 유효한 DDT는 처음에는 안전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용량이 점차 늘면서 어류·조류·야생동물에 부수적 피해를 입힌다고 경고하는 보고가 잇따랐다. 《침묵의 봄》은 DDT와 그것이 초래하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하며 치명적인 결과를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다.
1962년에 출간된 《침묵의 봄》은 대중을 충격 속에 빠뜨렸고, 화학 회사가 카슨에 대한 위협적 공격을 그치지 않았음에도 정부의 조치를 이끌어냈다. 이 책은 세계가 환경을 부주의하게 오염시키는 사태에 각성을 촉구했으며, 결국 환경보호국의 설립과 DDT를 비롯한 수많은 살충제의 사용을 전면 중단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당시 핵실험으로 인해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방사능 낙진과 유독 화학물질의 유사성을 이끌어냄으로써 대중을 경악케 한 카슨은 점잖고 이상적인 개념인 ‘보존’을 좀더 시급하고 논쟁적인 개념인 ‘환경주의’로 대체했다.
꼼꼼한 조사 작업을 거쳐 격조 있게 써내려간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를 읽어보면 카슨이 본시 수줍은 성격이지만 자기 일에서만큼은 열정적이었으며, 그녀를 열렬히 환호한 문단 세계보다는 자연 세계에 머물 때 한결 편안함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윌리엄 사우더는 카슨이 도로시 프리먼과 나눈 낭만적 우정에 대해서도, 1964년 암으로 죽어간 정황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의 참신하면서도 비범한 전기는 20세기의 위대한 개혁가 가운데 한 사람인 레이첼 카슨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2004년 출간된 린다 리어의 《레이첼 카슨 평전》과의 차별성
이 책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는 2012년 《침묵의 봄》 출간 50주년을 기념해 윌리엄 사우더가 새로 쓴 전기이다. 레이첼 카슨에 관한 전기는 2004년 이미 우리나라에 나온 적이 있다. 1997년 린다 리어가 쓴 《레이첼 카슨 평전(Rachel Carson: Witness for Nature)》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두 책은 어떻게 다른가.
사우더의 평전도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리어의 평전은 그 갑절에 가까울 정도로 방대하다.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으로 기술한 치밀하고 밀도 있는 전기로, 카슨의 삶을 촘촘하게 망라하고 있는 노작이다. 반면 사우더는 리어와 달리 시간 흐름에 따른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시종 “보존주의 시대를 살면서 환경주의를 잉태한 삶”이라는 창을 통해 카슨을 조명했다. 리어의 책에 등장하는 엄청나게 많은 인물도 카슨의 삶에서 중요한 몇 명만 남기고 과감히 생략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 저술과 저자들, 그것이 그녀의 저작으로 결실을 맺기까지 과정에 집중했다. 이러한 대담한 생략과 집중을 통해 이슈 중심으로 굵직굵직하게 책을 엮어나갔다. 헨리 윌리엄슨 이야기, 리케츠와 레오폴드 이야기, 제5후쿠류마루 이야기 따위가 마침내 카슨의 고민과 이어지는 구성 방식은 이채롭고도 절묘하다.
린다 리어의 평전에서는 카슨의 삶을 성취와 슬픔과 고뇌를 통해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사우더의 평전에서는 그녀가 우리 인류에게 남긴 유산과 교훈을 다시금 현재적 시각으로 되새겨볼 수 있다. 섬세함이 돋보이지만 나열적이고 다소 평면적인 리어의 평전과, 과감한 생략과 집중을 통해 입체적으로 속도감 있게 글을 전개하는 사우더의 평전을 비교하노라면 자연스레 여성작가와 남성작가 특유의 빛깔도 드러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독서와 자연 관찰을 즐겼던 어린 시절
레이첼 루이즈 카슨(Rachel Louise Carson)은 1907년 5월 27일 새벽 1시 30분, 스프링데일의 작고 흰 판잣집에서 태어났다. 갓난아기 카슨은 태어난 지 3주째부터 집 앞 베란다에 매단 해먹에서 규칙적으로 낮잠을 잤다. 5개월 즈음에는 수두를 심하게 앓았다. 어머니에 따르면, 레이첼은 8개월이 되자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입에 뭘 넣지 말라는 주의를 들으면 “악동 같은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레이첼은 자라면서 책을 읽거나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했고, 대개 엄마와 함께 정기적으로 가족 소유지를 거닐면서 동물이며 새를 관찰하는 것을 즐겼다.
레이첼의 집은 북적거렸다. 오빠 로버트 말고 레이첼에게는 메리언이라는 언니도 있었다. 로버트는 때로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기거하기도 했다. 로버트도, 메리언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가족의 경제 사정은 늘 빠듯했다. 역시 로버트라는 이름의, 다정하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한 레이첼의 아버지는 전기 기사·보험 판매원·야간 경비원 따위 일을 하기도 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봉급을 받아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는 피아노 레슨을 해서 살림에 보탰다.
레이첼은 〈세인트 니컬러스〉에 계속 작품을 보냈고, 그중 몇 개가 잡지에 실렸다. 스프링데일의 학교는 10학년까지만 있어서 레이첼은 마지막 2년을 인근의 파나수스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1925년 그 학교를 졸업했다. 급우들 사이에서 열렬한 독서광이자 글 솜씨 좋은 친구로 통한 매우 뛰어난 학생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카슨을 깨워 아침 햇살을 받으며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했고, 카슨은 학교로 가면서 새들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레이첼이 4학년 때 제출한 논문 〈지력의 낭비(Intellectual Dissipation)〉는 인간의 잠재력을 진지하고도 비판적으로 탐색한 글이다. 카슨은 이 글에서 “사고하고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지금껏 읽은 책보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이 훨씬 많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책 하나를 읽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다른 책을 읽을 기회를 놓치는 거라는 사실에 두려움과 좌절감을 느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은 읽을 수 없다. 오늘 최신 베스트셀러를 읽는 데 쓴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어서 “진정한 문학, 즉 당신을 어제보다 조금 더 고양시켜주고, 세계가 굴러가는 데에서 당신이 맡은 역할에 좀더 적극적이고 유능해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을 읽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쪽이 한결 가치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과학자의 길로 들어선 대학 시절
펜실베이니아 여자대학(PCW)은 피츠버그 동쪽 부유층 거주지인 우드랜드 로드에 자리한 섬 같은 곳으로 몇 개의 건물로 이뤄졌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신입생인 레이첼 카슨이 앞으로 생활하게 될 베리 홀(Berry Hall)이었다. 안으로는 천장이 높이 솟아 있고, 밖으로는 뾰족한 박공과 총안(銃眼)으로 장식한 벽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베리 홀은 60개의 방에 카펫과 고급 가구가 비치되어 있었다. 카슨에게 수돗물도 안 나오는 집을 떠나 이 새로운 거처로 옮기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호사스러운 일이었다.
카슨은 전국 단위의 경쟁을 뚫고 장학금 100달러를 받았다. 부모님은 스프링데일의 땅을 팔거나 그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딸의 학비를 조달할 계획이었다. 처음 2년 동안은 그럭저럭 비용을 감당했지만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그래서 레이첼에게는 대학 3∼4학년 동안 지식과 빚이 같은 속도로 쌓여갔다.
PCW에서 젊은 여성을 가르치는 목적은 주로 한 1∼2년 교사로 근무하다 결혼해서 주부가 되게끔 하려는 것이고, 고등 교육은 언젠가 좀더 나은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는 데 필요한 개인적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럼에도 PCW의 교육 과정은 여느 인문과학 대학과 다를 바 없었다.
카슨은 어머니가 지어준 특이할 정도로 허름한 옷조차 단 몇 벌밖에 없었다. 여느 여학생들처럼 카슨도 단발이었고, 이따금 뜨거운 고데로 단단하게 마르셀 웨이브를 주어 머리카락이 마치 헬멧처럼 머리통에 딱 붙어 있곤 했다. 수업 시간에는 결코 부끄럼을 타는 법이 없고 수업 준비를 게을리 한 적도 없었다. 카슨은 어떤 질문에든 답을 알고 있었고, 발표하려는 욕구도 강했다. 카슨에 대해 알게 된 몇몇 여학생은 카슨이 재치 있고, 천박함이나 허세에 빠지지 않으려 하며, 안 보는 듯하면서도 급우들을 예리하게 관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것은 카슨이 거의 드러내지 않은 인성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대체로 존재감이 없었던 카슨은 사교 모임에도 대부분 참석하지 않는, 말 없고 겁 많은 여학생에 재미없는 외톨이 학구파로 여겨졌다.

카슨은 대학에 입학한 후 영어를 전공했다. 당시 PCW 학생 대다수는 과학 수업을 미리 수강하고 마친 데 반해, 카슨은 1학년 때 그 필수 과목을 건너뛰었다. 그러다 2학년 때 생물학을 신청했다. 1925년 가을, 영문학과는 일반생물학·식물학·인간생리학의 3개 과학 강좌만 제공했다. 카슨이 4학년 때에는 고급식물학·일반동물학·미생물학·유전학을 비롯해 10개 강좌로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를 이끈 것은 캠퍼스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이자 생물학과 학과장인 메리 스콧 스킨커(Mary Scott Skinker)였다.
카슨이 생물학이나 스킨커 교수의 영향을 받아 달라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런데 카슨은 A학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꾸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생물학 분야는 카슨의 생애 내내 이뤄진 것에 비하면 여전히 초보적인 단계였다.
진화는 1920년대 생물학 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과학자들은 아무도 생명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 답할 수 없지만,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일찍이 유기물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카슨은 이러한 수업들을 들었고, 진화론은 훗날 카슨이 바다에 관해 집필할 내용의 핵심을 이뤘다.

PCW를 졸업한 후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한 생각은 다음의 순간, 즉 심오한 통찰력을 발휘한 순간의 경험에 영향을 받았다. 어느 날 밤, 카슨은 앨프리드 테니슨(Alfred Tennyson) 경의 길고 까다로운 시 〈록슬리 홀(Locksley Hall)〉을 읽고 있었다. 기숙사 밖에서는 천둥을 실은 매서운 폭풍우가 어둠에 잠긴 캠퍼스에 퍼붓고 있었다. 빗물이 창문을 때리고 천둥이 산허리를 뒤흔들 때, 카슨은 그 시의 마지막 몇 줄을 읽으며 똑바로 앉아 있었다.

가장자리에서 몰려온 폭풍우가 황무지와 잡목 숲을 검게 물들이고
모든 돌풍과 그 속의 번개를 집어삼킨다.

폭풍우여, 록슬리 홀로 밀려오렴. 비나 우박 또는 불이나 눈과 함께.
강풍이 일어 노호하며 바다로 밀려가면, 나도 가리니.


한 번도 바다를 직접 본 적 없는 카슨은 불현듯 바다야말로 자신의 운명이라는, 자신이 새롭게 사랑에 빠진 과학이 언젠가 당도할 곳이라는 강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
매사추세츠 주 우즈홀에 있는 해양생물학연구소(MBL)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 현장 연구소였다. 메리 스콧 스킨커는 PCW에 재직하는 동안 여름이면 MBL에서 원생동물학을 연구하며 시간을 보냈다. 스킨커는 카슨에게 졸업 후 MBL 여름 연구원 자리에 지원해보라고 권유했다. PCW를 우등으로 졸업한 해 여름, 스킨커의 도움으로 8월 한 달 동안 MBL에서 연구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았다.
카슨은 우즈홀과 MBL 단지가 기대했던 것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아름답다고 느꼈다. 한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는 우즈홀이 “생물학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며, 매년 여름 이곳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1935년 7월, 아버지 로버트 카슨이 세상을 떠나고 레이첼은 스물여덟 살에 가장이 되었다. 카슨은 존스 홉킨스의 박사 과정을 1년 반 남겨둔 채 그만두었다. 그리고 학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시간제 일을 이어갔다. 당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농무부에서 일하던 메리 스콧 스킨커는 카슨에게 공무원 임용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1935년 10월 카슨은 어업국 볼티모어 사무실의 현장 조수로 임용되었다.
어업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1936년 초, 카슨은 어머니가 깔끔하게 타이핑해준 체서피크 만의 청어잡이에 관한 원고를 〈볼티모어 선〉에 보냈고, 잡지사는 그 원고를 지체 없이 채택했다. 카슨의 첫 신문 기고문 〈곧 청어의 시대가 올 것이다(It’ll Be Shad Time Soon)〉는 1936년 3월 1일자 〈볼티모어 선〉 일요일판에 실렸다. 그로부터 4년 동안 카슨은 〈볼티모어 선〉에 수시로 기고하면서 야생 동식물에 관한 여러 가지 주제의 글을 썼다.
사이먼 앤드 슈스터와 출판 계약을 맺은 뒤에도 카슨은 책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밤 시간과 주말에 계속해서 〈볼티모어 선〉에 기고할 특집 기사를 썼다. 그리하여 1941년 첫 책 《바닷바람을 맞으며》를 출간했다. 〈뉴욕 타임스〉는 서평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를 “아름답고도 보기 드문 책”이라고 극찬했다. 서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카슨은 훗날 《바닷바람을 맞으며》가 참패한 것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탓으로 돌렸다. 카슨은 나치 동조주의자에게 영감을 받은 책이 전시에 판매가 부진하다는 사실에서 무언의 메시지를 얻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저 맘속에만 담아둔 것으로 보인다. 카슨은 늘 제프리스-윌리엄슨-카슨으로 이어지는 문학적 계보가 은총이라고,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바로 그 계보가 낳은 자식이라고 믿었다.

1942년 5월, 카슨은 부(副)수생생물학자로 내무부 산하 어류·야생동물국, 곧 FWS의 어류생물학분과에 배정되었다. 사무실에는 남쪽으로 난 창문이 있었다. 카슨은 그 창문을 통해 나무며 새들을 그리고 세상사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무심하게 펼쳐져 있는 워싱턴의 하늘을 바라다보곤 했다. 당시 경제 대공황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미국은 다시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레이첼 카슨은 겨우 몇 달 동안만 그 내무부 건물에서 근무했다. 1942년 8월 카슨이 속한 부서가 시카고에 임대한 FWS 사무실로 이전한 탓이다. 다행히 전근 기간은 짧아서 1943년 5월 카슨은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워싱턴에 도착한 직후 카슨은 내무부에 있는 FWS 사무실로 복귀했다. 1년 뒤 FWS는 정보 전문가라는 새로운 직위를 하나 마련했고, 카슨을 그 자리로 승진시켰다. 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게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에도 카슨은 뭔가 다른 것을 간절히 꿈꾸고 있었다.
1951년 4월에 카슨은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첫 신간 견본을 받았다. 카슨과 로델은 형편없는 제본 상태에 실망했다. 최초 인쇄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옥스퍼드는 회수할 수 있는 책은 모조리 다시 제본하고, 앞으로 나올 책에 대해서는 제본 상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6월, 카슨은 FWS에 1년의 무급 휴가를 신청했다. 한여름쯤에는 정부 일을 그만두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1952년 봄, 카슨은 해안 관련서의 집필을 진척시키고, 자기 시간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키웨스트로 떠났다. 옥스퍼드에는 우즈홀로 조사 여행을 떠나야 하고 메인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이므로 앞으로 몇 달 동안 판촉 업무에 들일 시간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때까지 휴직 중이던 카슨은 결국 FWS에 복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6월에 수리된 카슨의 사직서에는 퇴직 사유가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적혀 있었다.

나치 독일을 흠모한 작가 윌리엄슨, 그를 추앙한 카슨
완고한 은행원의 아들인 헨리 윌리엄슨은 감성적인 젊은이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 전선에 한 달가량 참전했을 뿐이지만, 집으로 보낸 편지에 쓴 대로 “전쟁 가운데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록될 “피비린내 나는 쓰라린 싸움”을 목격했다. 훗날 ‘크리스마스 휴전’으로 알려진 전쟁 중 잠시나마 적의를 거둔 경험은 윌리엄슨으로 하여금 전쟁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윌리엄슨의 조사는 대부분 직접 관찰로 이루어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 나갔다 하면 몇 시간씩 강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로서는 좀체 설명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 탓에 《연어 살라》는 비참하리만큼 쓰기 힘든 책이었다. 이토록 따분한 일에 매달려 꼼짝 못하고 있자니 너무나 화가 치밀어 책 쓰는 시간의 4분의 3을 제발 이 일 말고 다른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데 허비했을 지경이다. 윌리엄슨은 그 책을 1935년 8월에 완성했는데, 연어가 안 죽으면 자기가 죽을 것 같아서 서둘러 마무리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책에는 그가 겪은 어려움의 흔적이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았다. 책은 한마디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초주검이 되긴 했지만 《연어 살라》를 마무리해 홀가분해진 윌리엄슨은 그 책이 출간되길 기다리는 동안 여행을 떠났다. ‘크리스마스 휴전’처럼 그의 인생에서 일대 전환점이 된 여행이었다. 1935년 9월 초, 사우샘프턴에서 브레멘호를 타고 브레머하펜에 도착한 윌리엄슨은 그곳에서 독일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베를린행 기차를 탔다. 그의 여정에는 뉘른베르크에서 열리는 국가사회주의당(히틀러가 이끈 나치 정당)의 연례 집회 초대 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뉘른베르크 집회는 볼 만했다. 100만 인파가 도시를 수놓았고,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히틀러가 군중에게 연설한 첫날, 윌리엄슨은 나치 휘장을 드리운 그 거대한 집회장의 규모와 극적 효과가 장관을 이루었다고 묘사했다.
뉘른베르크 집회를 전후해 윌리엄슨은 나치가 지배하는 독일에 호감을 느꼈다. 그들의 모든 게 일사분란하고 산뜻해 보였다. 거리에는 쓰레기 한 조각도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기운차고 느긋해 보였으며, 독일이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의심의 눈길을 경멸하는 듯했다.
윌리엄슨은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방문하기 전부터 나치 독일에 우호적이었다. 그는 ‘크리스마스 휴전’ 이후 독일의 전반적인 것들에 호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인지 히틀러에 대해서도 동류의식을 느꼈다. 윌리엄슨은 히틀러가 평화 애호가이며, 독일이 국권을 제대로 유지하는 한 전쟁을 피하려 한다고 굳게 믿었다. 게다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만약 T. E. 로런스가 살아 있다면 히틀러에 대해 자기와 마찬가지로 느꼈을 거라고 믿었다. 윌리엄슨은 히틀러와 로런스, 두 사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카슨은 윌리엄슨을 추앙했는데, 그의 책을 소개하려고 잡지사에 보낸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는 다른 어떤 자연주의 저술보다 윌리엄슨의 《수달 타카의 일생》과 《연어 살라》에 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쓴 산문은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큼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 책 전반에 걸쳐 수중 세계의 분위기를 재창조하는 그의 능력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의 관찰력, 자신이 다루는 생물체에 대해 동정을 느끼면서도 결코 감상으로 빠지지 않는 이해심 그리고 자신이 관찰한 것에 대한 심오한 해석 능력도 감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웨스트 컨트리여, 안녕》은 그 자체로 매혹적인 페이지들로 가득하고, 저자가 지나온 상황을 충분히 드러냄으로써 그가 수달과 연어에 대해 쓴 책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도록 해주었습니다.

카슨이 “최고의 자연주의 서적”이라고 평한 《수달 타카의 일생》과 《연어 살라》를 통해 윌리엄슨은 자연 세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연속적인 삶과 죽음의 주기를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카슨은 윌리엄슨이 잠깐 동안 본 생물의 삶조차 총체적으로 인지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유한함을 슬퍼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것이 바로 자연이 굴러가는 방식임을 분명하게 깨달은 “예민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는 카슨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킨 주제였다. 《웨스트 컨트리여, 안녕》이 주로 자연을 다룬 책이냐 아니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공정하게 말하면, 서평에 할애한 지면이 너무 짧아서 빠뜨릴 수밖에 없는 내용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애틀랜틱 먼슬리〉는 자사의 저자들을 선전하는 일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만큼이나 철저히 비판적인 서평을 싣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서평은 짧고 호의적이어야 했다. 카슨이 그 책에서 가장 좋아한 것을 강조하려 했던 바람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카슨의 서평은 《웨스트 컨트리여, 안녕》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듯 그 책에서 가장 상세하고 세밀하고 중요하게 다룬 부분, 즉 윌리엄슨이 1935년 가을의 나치 독일 방문을 열정적으로 회고한 대목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장장 30쪽에 걸쳐서 전개되는 의미심장한 부분으로, 윌리엄슨이 히틀러를 얼마나 흠모하는지 잘 드러나 있는 대목이다. 《웨스트 컨트리여, 안녕》에서는 그 부분 말고도 곳곳에 히틀러와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 대한 호감이 은근하게 배어 있다.
카슨이 PCW에 다닐 때 그 음습한 의미는 까맣게 모른 채 테니슨의 〈록슬리 홀〉을 읽은 것처럼 《웨스트 컨트리여, 안녕》도 그렇게 읽은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저 윌리엄슨이 유럽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유럽이 독일과 전쟁 중인지 평화 중인지에 관해 무신경했을 수도 있다. 카슨은 루스벨트의 뉴딜 행정부 내에서 일하며 부러울 게 없었고, 인생 말년에는 자신이 민주당원임을 얼핏 내비치기도 했지만 본시 정치에는 줄곧 무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출간 이후 점점 불어나는 수많은 팬들에게 카슨이 직접 밝힌 자신의 모습
카슨은, 사실 자신은 수도 없는 전문적 논문과 과학 기사를 읽으면서 때로 이렇게 거창하고 어려운 주제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회의에 빠지기도 한, 그저 집요한 연구자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더러 작가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저자의 숙명이랄 수 있는 고독한 혼자만의 시간에 관해 얼마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카슨은 원고를 계속 손보면서 더디게 글을 쓰는 작가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늦은 밤에 일이 가장 잘 풀린다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밤을 꼬박 새고 새벽녘까지 글을 쓰기도 했다고, 그러고는 낮에 잠을 잤다고 했다. 타자기를 사용해 글을 쓸 수 있기까지 수년이 걸렸으며, 여전히 어려운 구절이 나오거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소보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면 손으로 원고를 썼다고도 했다.
독서는 카슨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도피처였다. 카슨이 특히 좋아한 바다 이야기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 베스톤의 《세상 끝의 집》, H. M. 톰린슨이 아마존 강 상류 여행에 대해 쓴 《바다와 정글》 등이었다. 카슨은 늘 소로의 《일기》와 리처드 제프리스의 자연 에세이 책을 침대 맡에 두고,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마치 즐거운 의식이라도 치르듯 둘 중 하나를 집어 들고 몇 쪽씩 읽다 잠들곤 했다.
카슨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모든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했다. “사소하긴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내가 완전한 뱃사람이기를 기대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실망감을 안겨준다. 나는 수영 실력이 신통치 않으며 해산물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리고 열대어를 애완용으로 기르지도 않는다. 내게 이제껏 가장 가까운 동물 친구는 고양이였다.”

과학을 과학이라고 의식하지 않게 하는 글쓰기
바다를 다룬 카슨의 저작들은 하나같이 ‘시적’인 색채를 띤다. ‘시적’이라는 말은 다루는 주제를 감안할 때 도무지 기대하기 어려운데도 카슨이 우아한 글을 쓴다고 지적할 때마다 평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었다.
카슨의 특별한 재능은 과학을 너무도 생생하게 만들어 독자들이 그것을 과학이라고 의식하지 않게끔 해준 데 있었다. 까다로운 주제를 보통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풀어내는 카슨은 대중적이면서도 과학적 정보로 가득 찬 책, 즉 사실들 속을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누비고 다니는 책을 썼다. 바다는 늘 카슨에게 이야기였고, 카슨은 바다를 이야기처럼 들려주었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출간 후 대부분의 평자들은 서정적인 묘사력을 지적하면서 거의 예외 없이 “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뉴욕 타임스 선데이 북 리뷰〉에서 조너선 노튼 레너드(Jonathan Norton Leonard)는 이 같은 특징에 이의를 제기했다. 레너드는 바다에 대해 쓰고자 하는 과학자들은 너무 흔하게도 자기들만의 “건조하고 전문적인 용어”를 남발하는 우를 범하고, 시인들이 바다에 관해서 쓸 때 저지르는 오류는 “과학자들을 화나게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양측 모두의 항의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목적에 충분한 정도 이상으로 정확하게 썼으며, 문체와 상상력은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러면서 “책을 낸 출판사가 카슨 양의 사진을 책날개에 싣지 않은 게 유감이다. 까다로운 과학을 이처럼 아름답고도 정확하게 풀어 쓸 수 있는 여성이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알면 좋았을 것이다”고 쓰기도 했다.
카슨은 《바다의 가장자리》를 쓰기 위해 메인 주에서 키웨스트에 이르는 대서양 해안 지방의 여러 장소를 탐험했다. 그곳들을 찾아갈 때마다 해안과 바다의 풍경을 기록하는 데 공을 들였다. 바람의 감촉은 어떤지, 파도는 어떤 소리를 내는지 그리고 하늘과 모래는 어떤 모습인지……. 이런 묘사에 더해 관찰한 식물과 동물의 목록도 꼼꼼히 기록했다. 카슨은 낯익은 장소를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바다의 가장자리》는 카슨이 쓴 책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의 현장 조사를 폭넓게 참조한 가장 사적인 책이다. 이렇게 그 책은 카슨 자신의 목소리가 실리면서 더욱 생생해졌다. 카슨은 여전히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잡지나 전문적인 논문을 읽었으며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이제 마침내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고, 마치 함께 해안을 탐험하듯 독자들을 이끌었다.

초월적이고 낭만적인 우정, 도로시 프리먼
카슨과 도로시는 정녕 인정하기 꺼려지는 방식으로 사귄 것일까? 남아 있는 그들의 편지에는 범상한 육체적 사랑이나 욕망을 넘어서는 영역에 존재하는 초월적이고 낭만적인 우정이 담겨 있다. 그들이 서로에게 보낸 수백 통의 편지 어디에도 성적으로 친밀한 커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호 이끌림을 밝힌 내용은 찾기 어렵다. 상대를 향한 그들의 갈망은 거셌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그들을 덮친 “격렬한 감정적 경험”이었다. 그들은 더러 서로를 향한 둘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속삭이곤 했다. 같은 장소에 오랫동안 함께한 적이 거의 없는 도로시와 카슨은 주로 편지를 통해서, 둘의 마음과 정신 속에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차이는 상호 보완적이었다. 카슨은 유명하고 야망이 컸으며 작가로서 삶 말고 다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젬병이었다. 도로시는 보통 사람이었고, 스탠리와 풍요롭고 사랑스러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슬하에 아들을 하나 두었고 이젠 며느리도 보았다. 도로시는 요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일을 챙기며 살았다. 하지만 카슨은 제멋대로 뻗어나간 가족의 가장 노릇을 오랫동안 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집안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연이나 책, 음악에 대해 느끼는 강렬한 감정이었다. 즉 정신적 사랑의 가장 지고한 단계를 이루는, 삶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주로 자기 자신보다 더 크고 더 완벽한 “아름다운 것들”에 공감하는 식으로 관계를 키워나갔다.
카슨과 도로시가 느끼는 기묘한 일치(삶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나 감정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는 분명 서로에게 다른 의미를 띠었다. 카슨에게 도로시는 삶에서 경험한 가장 위대한 사랑이었다. 도로시에게 카슨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세계를 열어준 사람이었다. 언제나 새들이 노래하고, 바다의 선율이 결코 그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영원히 지속되는 세계를.

《침묵의 봄》: 링컨이 “저항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외쳤을 때와 같은 의무감
《침묵의 봄》을 집필할 무렵인 1960년대 초, 카슨은 갖가지 질병을 달고 살았다. 십이지장궤양을 앓았고, 겨우 회복하긴 했지만 폐렴에 걸려 한동안 일을 중단하기도 했다. 살충제와 암의 관련성에 관한 원고 두 꼭지를 다 쓰고 난 봄에 카슨은 왼쪽 가슴에서 혹 두 개를 발견했다. 의사는 제거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카슨은 10년 전에 간단한 시술로 제거했던 물혹 같은 것이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카슨은 ‘근치적 유방 절제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가슴에 있는 혹 가운데 하나는 악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적어도 림프절까지 번져 있었다. 그때부터 《침묵의 봄》을 마무리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2년 동안 암은 꾸준히 퍼져나갔다.
끝없이 손보면서 더디게 글을 쓰는 카슨은 《침묵의 봄》을 거의 4년에 걸쳐 집필했다. 가장 잘 알려지고 널리 사용된 것은 DDT라는 염소화 탄화수소 분자로 1874년에 합성되었으나 이후 몇십 년 동안 아무도 DDT의 실용화를 모색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39년 스위스 바젤의 J. R. 가이기 컴퍼니에서 일하는 마흔 살의 화학자 파울 뮐러에 의해 DDT가 곤충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DDT는 즉시 스위스에서 감자딱정벌레의 발생을 막는 데 쓰였고, 효과가 기막히게 좋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하여 DDT는 하룻밤 사이에 인간에게 병을 옮기는 이·진드기·모기를 퇴치하는 무기로 떠올랐다. DDT 생산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급증했다. 미 육군은 100만 명 넘는 민간인에게 DDT를 살포했으며, 1943년에는 나폴리에서 발진티푸스 전염병을 성공적으로 퇴치했다. 그러자 이 새로운 살충제가 곤충 매개 질병을 막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은 것은 아니었다.
1945년 6월 5일, FWS 항공기가 메릴랜드 주 프린스조지스 카운티 패턱선트 야생동물보호구역에 크실렌과 연료유에 녹인 DDT를 살포했다. DDT를 살포하고 며칠이 지난 후 연구원들은 이 살충제에 노출된 포유동물·조류·개구리·물고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했다. 조사는 몇 주 동안 계속되었다. 그들은 나중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DDT에 대한 초기의 열광을 “깊은 우려”로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슨은 실험의 첫 결과를 발표하기 전부터 이 인기 많은 신종 살충제에 의혹을 품고 있었다. 1945년 7월, 연구원들이 여전히 일에 매달려 있는 사이, 카슨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삿거리를 하나 제안했다. 카슨은 경쾌하게 시작한 제안서를 다음과 같은 놀라운 언급으로 마무리했다.
“실제로 제가 있는 이곳 메릴랜드에서 특별히 관심을 끄는 중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동안 DDT가 해충을 박멸함으로써 인간에게 보탬을 준다고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패턱선트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실험은 DDT를 광범위한 지역에 뿌리면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추진되었습니다. 즉 DDT가 익충 혹은 반드시 필요한 곤충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해충을 먹는 새나 물새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미묘한 자연의 조화 전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말입니다.”

바다에 영원히 잠들다
유방암이 간으로까지 번진 상태였다. 클리블랜드에 입원해 있던 몇 주 동안 카슨은 거의 사경을 헤맸다. 카슨은 도로시에게 유체 이탈을 경험했는데,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4월 초, 퇴원하기에 충분할 만큼 회복했지만 전혀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다. 도로시가 방문차 내려왔다. 1964년 4월 14일 아침, 도로시는 카슨에게 쓴 편지에서 “더없는 평화”를 느낀다며, 매일 아침 일어나면 맨 먼저 카슨이 전날 밤 잘 잤을까 궁금해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버스프링의 집 밖에서 새들이 매일 아침 노래한다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이냐고 적었다. 그날 오후, 카슨의 심장이 멎었다.
카슨이 남겨놓고 간 것들 가운데에는 도로시에게 쓴 편지도 있었다. 약 1년 전 며칠에 걸쳐 써둔 것이었다. 작별 인사로 가득한 그 편지에서 카슨은, 도로시가 함께한 마지막 순간의 슬픔이 아니라 그전에 있었던 숱한 즐거움을 기억해주길 소망했다. “나는 풍요로운 삶을 살았고, 극소수 사람만 허락받는 충분한 보상과 만족을 얻었어. 지금 당장 생이 끝난다 해도 하고 싶었던 일들 대부분을 이루었다고 자부할 수 있어.”
카슨은 화장되었다. 오빠 로버트는 유해 일부를 어머니 묘 옆에 묻어야 한다고 우겼지만, 사우스포트 섬의 바다에 뿌리자는 도로시 프리먼의 주장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1964년 5월 4일, 뉴아겐의 조류는 오전 5시에 고조였다. 사우스포트 섬 남단으로 차를 몰고 간 도로시는 6시 30분에 빠져나가는 썰물 앞에 섰다. 쾌청하고 맑은 날이었다. 파도가 마치 바다의 맥박처럼 바위에 부서졌다. 도로시는 움푹 들어간 화강암 틈새를 발견했다. 파도가 들이칠 때마다 물이 올라오는 곳이었다. 도로시는 그 바다 가장자리에 카슨의 유해를 뿌렸다. 흰 히아신스 한 송이가 그 뒤를 따랐다.

유산: 인간은 ‘자연의 중심’이 아니라 ‘자연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부고에 실을 내용을 정리하면서 호튼 미플린의 홍보부장 앤 포드는 카슨에 관한 기억을 적어 내려갔다. 포드는 카슨을 한때 “자연의 수녀”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건 카슨의 침실을 봤을 때 포드가 받은 느낌과 일치했다. 카슨이 단순함과 질서를 갈망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침실은 고요함과 평온함이 깃든 “단출한” 수도실 같았다.
환경운동을 시작하고 그 운동이 마침내 홀로 서도록 이끈 것은 모두 카슨의 공이다. 《침묵의 봄》은 탄원·논쟁·기도 등 많은 것을 의미하지만, 무엇보다 ‘옳은 것’이었다. 이는 처음에 회의적이었던 이들조차 끝내는 인정한 사실이다.
레이첼 카슨이 숨을 거두기 며칠 전인 1964년 봄, 내무장관 스튜어트 우달은 상원의원 리비코프의 위원회에 참석해 광범위한 살충제 오염의 증거가 너무도 확실해 전국 차원의 살충제 모니터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우달은 통제할 수 없는 맹독성 화학 살충제 사용을 중단할 때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1964년 가을, 우달이 새로 공표한 살충제 사용 규정에 따르면, 화학 살충제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최종적으로” 동원하는 방제법이어야 하며, 그럴 때조차 반드시 제한적으로 최저 용량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0여 년간 살충제의 위험은 환경운동의 중심 이슈였고, 결국 대기오염방지법(1963년), 수질오염방지법(1972년), 멸종위기종보호법(1973년)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1970년 4월 22일,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이 이끄는 환경운동가들이 최초로 ‘지구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취임 직후, 행정부 안에 ‘환경질위원회’를 창설했다. ‘지구의 날’ 대회를 조직하던 1970년 4월, 닉슨은 ‘연방살충제·살균제·살서제법’에 따른 살충제 사용과 등록을 포함해 환경 문제 전반을 공식적으로 규제·관리하는 기관을 신설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7월, 닉슨은 의회에 환경보호국 신설을 승인하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같은 해 12월, 환경보호국이 문을 열었다. 이 기관이 최초로 추진한 업무에는 DDT를 시작으로 수많은 살충제의 일반적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1970년대에 환경보호국은 DDT·알드린·디엘드린·클로르데인·헵타클로르·엔드린 등 살충제의 국내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2006년 세계보건기구는 말라리아 퇴치에 DDT를 사용하는 것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는 그 목적을 위한 DDT 승인은 결코 폐기한 적이 없지만, 그해에 DDT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다수 환경 단체가 이러한 움직임을 지지했다. 그들은 레이첼 카슨도 살아 있었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카슨이 화학 살충제 사용을 전면 중단하기를 바랐다는 사람들의 생각은 그릇된 것이었다.
카슨이 살아 있었다면 화석 연료 소비에 따른 지구 온난화를 역전시키거나 최소한 그 속도를 늦추는 실천이 부족한 데 대해서는 아마도 더 강경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조지 W. 부시는 2000년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동안 환경보호국이 온실 가스의 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규제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01년 집권하고 몇 주 만에 태도를 바꾸었다. 미국은 온실 가스를 제한하기 위한 국제 협약인 교토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2001년 6월, 부시가 지구 온난화 문제를 조사해보라고 지시한 기관인 국립과학아카데미는 지구 온난화가 사실이며 인간 활동이 그 주원인이라고 보고했다. 아울러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부시는 당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이 이런 상황을 알았다면 문제 해결 의지가 부족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무덤 속에서 탄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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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사우더(William Souder)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부지런히 글을 발표하고 있는 기고가이다. 그가 쓴 존 제임스 오듀본(John James Audubon)의 전기 《야생의 하늘 아래(Under a Wild Sky)》는 퓰리처 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 밖의 저서로 《개구리 떼(A Plague of Frogs)》가 있다. 현재 미네소타 주 그랜트에서 살고 있다.

옮긴이: 김홍옥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와 같은 대학 교육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광양제철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우리교육·삼인 출판사 등에서 근무했다. 옮긴 책으로 《경제성장과 환경 보존, 둘 다 가능할 수는 없는가》 《우리의 지구,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가》 《파괴의 씨앗 GMO: 미국 식량제국주의의 역사와 실제》 《가르침의 도》 《가르침의 예술》 《제약회사는 어떻게 거대한 공룡이 되었는가》 《레이첼 카슨 평전》 《월트 디즈니 1, 2》 《교사 역할 훈련》 《신과의 만남, 인도로 가는길》 《유인원과의 산책》 등이 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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