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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국가의 회화-조선시대 궁중회화 1(왕실문화총서1)
저자 : 박정혜,윤진영,황정연,강민기 ㅣ 출판사 : 돌베개

2011.05.09 ㅣ 372p ㅣ ISBN-13 : 978897199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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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인문 > 한국역사/지리 > 조선시대사
『왕과 국가의 회화』는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를 지나 일제강점기까지 존재했던 궁중의 그림과,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총망라한 책이다. 여기서 궁중의 그림 즉 ‘궁중회화’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인 왕실(대한제국기 이후에는 황실)에서 그려지고 향유되었던 그림과, 최고 권위와 공적 개방성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궁궐에서 주관하여 제작된 모든 그림을 뜻한다. 즉 궁중 안팎에서 왕과 국가를 위해 그려진 다양한 그림들을 포괄한다.

‘궁중회화’는 제작 목적과 용도, 제작자와 향유층을 고려하여 대략 일곱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어진(御眞)과 공신상(功臣象), 각종 시각적 문서와 실용화, 의궤 속의 그림들, 궁중행사도, 감계화, 왕과 왕족이 취미로 직접 그리거나 감상했던 그림, 장식병풍과 벽화가 그것이다. 제1부에서는 이상 언급한 일곱 가지의 큰 틀에서 조선 궁중회화의 역사와 흐름, 그 기능과 내용을 면밀히 살핀다.

제2부에서는‘왕이 그림을 바라본 시각과 그림을 평가한 기록"과‘왕이 그린 그림’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한 문헌 기록과, 왕이 그림을 직접 감상하고 그 위에 남긴 어제(御製)를 통해서 공식적인 측면에서의 왕의 그림취미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대신들의 견제와 제약 속에서 비공식적이고 은밀하게 행해져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희귀한 자료인 ‘왕이 직접 그린 그림’을 통해서, 보다 사적인 ‘왕들의 그림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그밖에 제3부에서는 왕실이 직접 운영했던 회화 컬렉션의 구체적인 상황, 이들 작품을 보관했던 궁궐의 전각과 관리체계 등을 살펴보고, 마지막 제4부에서는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왕실 미술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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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책머리에

제1부 궁중회화의 세계 |박정혜

1. 궁중회화를 이해하는 첫걸음
2. 왕실의 안위와 계승: 어진, 공신상
3. 국정의 운영과 실용: 각종 시각적 문서와 실용화
4. 기록과 보존: 도감의궤와 의궤도
5. 재현과 기념: 궁중행사도
6. 감계와 교육: 감계화
7. 취미와 감상: 왕과 왕족의 그림
8. 의례와 장식: 궁중장식화, 벽화
9. 궁중회화의 특징

제2부 조선시대 왕의 그림취미|윤진영
1. 그림과 왕의 취미
2. 왕의 그림취미와 왕실 환경
3. 역대 국왕의 그림취미
4. 왕이 그린 그림
5. 글을 맺으며

제3부 조선왕실의 회화컬렉션과 궁중 미술관|황정연
1. 궁중회화 컬렉션 둘러보기
2. 조선왕실 회화컬렉션의 전통
3. 궁중 미술관: 그림을 보관했던 전각
4. 궁중에 보관했던 그림들
5. 일제강점기 궁중 컬렉션
6. 조선 궁중회화 컬렉션의 의미를 되새기며

제4부 제국을 꿈꾸었던 전환기의 한국화단|강민기
1. 전환기의 국가와 미술
2.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3. 영원한 제국을 꿈꾸며
4. 대한제국의 미술정책

부록

참고문헌
도판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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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역사의 단편이 낱낱이 기록된, 치밀하고 생생한 영상매체!
조선 궁중 회화의 모든 것을 담은 『왕과 국가의 회화』


『왕과 국가의 회화』는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를 지나 일제강점기까지 존재했던 궁중의 그림과,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총망라한 책이다. 여기서 궁중의 그림 즉 ‘궁중회화’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인 왕실(대한제국기 이후에는 황실)에서 그려지고 향유되었던 그림과, 최고 권위와 공적 개방성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궁궐에서 주관하여 제작된 모든 그림을 뜻한다. 즉 궁중 안팎에서 왕과 국가를 위해 그려진 다양한 그림들을 포괄한다.

‘궁중회화’는 제작 목적과 용도, 제작자와 향유층을 고려하여 대략 일곱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왕실의 안위와 계승을 위한 그림 어진(御眞)과 공신상(功臣象), 국가의 행정 운영에 쓰였던 각종 시각적 문서와 실용화, 기록과 보전을 위해 그려진 의궤 속의 그림들, 행사를 재현하고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궁중행사도, 교육과 감계를 위해 그려진 감계화, 왕과 왕족이 취미로 직접 그리거나 감상했던 그림, 궁궐의 안팎을 장식했던 장식병풍과 벽화가 그것이다. 제1부에서는 이상 언급한 일곱 가지의 큰 틀에서 조선 궁중회화의 역사와 흐름, 그 기능과 내용을 면밀히 살핀다. 실례로 든 200여 컷의 그림(제1부 수록 도판)을 통해 조선왕조에서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역사의 단편들이 치밀하고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야말로 ‘궁중회화’란 그림으로 고스란히 재현된 조선 왕실의 역사인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 다루는 아주 특별한 주제는, 왕과 왕족들이 감상하거나 직접 그렸던 그림들에 관한 것이다. 제2부에서 다루는 ‘왕의 그림취미’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의 축으로 전개되는데, 하나는 ‘왕이 그림을 바라본 시각과 그림을 평가한 기록’이며, 또 하나는 ‘왕이 그린 그림’에 관한 것이다. 책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한 문헌 기록과, 왕이 그림을 직접 감상하고 그 위에 남긴 어제(御製)를 통해서 공식적인 측면에서의 왕의 그림취미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대신들의 견제와 제약 속에서 비공식적이고 은밀하게 행해져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희귀한 자료인 ‘왕이 직접 그린 그림’을 통해서, 보다 사적인 ‘왕들의 그림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궁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절대 권력자의 문예취미는 어떤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어떤 변화를 보였고, 이것이 당시의 시대 성향 및 역사의 흐름과는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밖에 제3부에서는 왕실이 직접 운영했던 회화 컬렉션의 구체적인 상황, 이들 작품을 보관했던 궁궐의 전각과 관리체계 등을 살펴보고, 마지막 제4부에서는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왕실 미술을 살펴본다. 국운이 쇠락해가는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저물어가는 시기였으나 문물의 개화정책과 함께 국가가 주도하는 미술정책이 활발히 시행되었다. 오늘날 미술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박람회․박물관 제도의 유입과 시행이 거의 모두 대한제국기 10여 년간에 이뤄졌다. 또한 이 시기는 유화를 비롯한 서양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정치적 관계에 의해 유입된 일본화가 한국화단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이 ‘근대 전환기’ 왕실의 미술을 통해서, 격동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의 국가적 미술정책과 그 속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일곱 가지 큰 틀에서 살펴본 조선 왕실의 회화

1. 왕실의 안위와 계승을 위한 그림 - 어진(御眞)과 공신상(功臣象)

조선시대에 왕의 초상은 왕의 존엄과 권위의 상징 그 자체였다. 이러한 왕의 초상은 치도(治道)를 위한 정치적 기능과 왕실 제례의 대상으로서 감계적 기능을 하였고, 어진을 실은 가마 행렬이 궁 밖으로 나와 진전(어진을 모시는 전각)으로 이동하는 봉안 여정은 그 자체로서 백성들에게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하였다. 따라서 궁중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졌던 회화 업무는 어진을 그리는 도사(圖寫)와 모사(摸寫)였다. 본문에서는,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왕의 초상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현재까지 전해오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의 초상을 살피고, 어진의 제작․어진의 봉안처 등을 간략히 살펴본다.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운 공신들의 초상 제작 역시 국가적 차원의 중대한 화사(畵事)로, 조선초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공신상 제작과 봉안․수여의 변화, 공신상 제작과 관련한 의궤 및 공신상과 일반 사대부상의 관계도 짚어본다.

2. 국가의 행정 운영에 쓰였던 그림들 - 각종 시각적 문서와 실용화

유교적 예치국가였던 조선에서 왕의 궁 밖 행차는 쉽지 않았고, 왕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때문에 왕이 대신들과 국정을 논하고 신료들에게 업무보고를 받을 때, 많은 경우 시각적 자료가 이용되었다. 지방관이 업무를 보고할 때, 산릉과 태봉을 설치할 길한 땅을 택할 때, 변방의 일을 아뢸 때, 산성이나 행궁을 조성할 때, 행정구역을 합치거나 나눌 때 왕이 직접 가보지 못하는 특정 지역에 대한 각종 지형도와 지도, 산수형세도, 형지도, 축성도, 태실산도 등을 그려 의견을 나누고 사안을 결정하였다.
중국에 공물로 보낼 매의 사냥을 위해 중앙에서 제작해 지방으로 배포했던 매 그림, 죄인에 대한 형벌을 사리에 맞게 행하도록 중앙에서 표준화하여 반포한 고신도(拷訊圖, 죄인을 심문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해․달․별과 기상이변에 대한 보고를 위해 제작된 재이도(災異圖), 가뭄에 지내는 기우제 때 그려진 용 그림 등도 국정에 시각적 자료로 쓰인 실용도였다.

3. 기록과 보전을 위한 그림 - 의궤에 수록된 그림들

의궤란 조선시대에 국가와 왕실 차원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이어 최근 프랑스와 일본이 약탈해갔던 의궤들이 국내로 반환되면서, 치밀하고 생생한 조선왕실의 기록 문화이자 뛰어난 예술성과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시각 매체로서, 의궤는 더더욱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근대적인 그림〔圖畵〕의 개념이 도입되기 이전, 시각 이미지로서 전통적인 ‘도’(圖)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였다. 특히 유교국가에서 예제를 확립하고 거행하는 데 도식, 도설, 반차도 등으로 불리는 ‘도’는 빈번히 제작되었다. 초기에 의궤도는 글씨와 그림으로 이뤄진 도표 형식이었으며, 17∼18세기를 거치면서 내용과 표현 형식, 색채 면에서 다양해진다. 또한 목판기법의 활성화로 더욱 능률적인 생산까지 가능해진다.
각종 의례에 사용되는 의물 제작의 샘플 그림이라 할 수 있는 견양도, 왕자나 공주․옹주 등의 태를 묻는 태실의 석물 부분도와 완성도인 난간석조작도나 난간배설도, 건물의 중건․수리․증축 때 그려진 건물도, 왕실의 주요 행사와 의례 때 배치되는 관원과 의물의 위치․순서․수 등을 표시한 그림인 반차도 등이 의궤에 수록되었다. 본문에서는 특히 필선의 생동감과 색채의 화려함, 치밀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다양한 반차도와, 정조시대 목판기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원행을묘정리의궤』·『화성성역의궤』, 19세기 궁중 잔치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진찬의궤』와 『진연의궤』에 실린 의궤도들에 주목하고 있다. 의궤와 의궤도의 제작은 다행히 일제강점기에도 그 맥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형식과 표현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4. 행사를 재현하고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 - 궁중행사도

사진처럼 행사 장면의 순간을 그대로 담는 궁중행사도는, 기록과 기념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했다. 기록에는 조선 초기부터 그려졌다고 하며, 조선 관료사회에 만연해 있던 관리들의 계회도 제작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조선후기 예제(禮制)의 기틀을 확립한 영조시대에는 선대 왕의 성대한 뜻을 잇는 계술(繼述)이 효의 실천 중 가장 큰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에 오랫동안 행해지지 않던 옛 시대의 의례를 부활시켰다. 대부분의 의식을 마친 뒤에는 그 내용과 형식을 보완하여 기록하고, 행사도를 그려 관계자들로 하여금 나눠 갖도록 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영조 연간에는 여러 주제의 궁중행사도가 새롭게 시도되는 결과를 낳았다. 청계천 준설공사를 완료한 뒤 제작한 《준천계첩》, 영조가 사옹원을 방문하여 어제(御製)와 말〔馬〕을 하사한 일을 기념한 그림 〈영조사마도〉, 영조가 경의궁의 경현당에서 승정원과 홍문관 관원들에게 그 전날 『춘추』(春秋) 강독을 마친 것을 기념해서 내린 선온(宣醞, 임금이 신하에게 궁중에서 빚은 술을 내리는 것) 광경을 그린 〈경현당갱재첩〉 등이 소개된다. 또한 왕통을 이어받을 제1후보자로 왕 다음으로 주목받았던 인물인 왕세자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 그림도 남아 있다. 18세기 이전 왕세자와 관련된 그림은 왕의 은총을 입은 영광, 행사 관련 관료들 간의 결속과 진행의 노고를 기념하는 계회도 성격이 강했고, 18세기 이후에는 왕세자로 책봉되는 장면이나 왕세자의 교육과 관련된 동궁의례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행사도 제작이 활기를 띠었다. 《문효세자책례계병》이나 세자의 성균관 입학 의식을 그린《왕세자입학도첩》 등이 대표적이다.

5. 교육과 감계를 위해 그려진 그림 - 감계화

조선시대에 가장 빈번하게 그려 올려지고 열람되었던 그림의 유형은 감계화였다. 그중에서도 농사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빈풍도류와, 옛 성군과 현비의 고사를 그린 그림이 주류를 이뤘다. 농민의 생활과 농촌의 정경을 노래한 『시경』「빈풍칠월편」에서 유래한 빈풍칠월도, 주공이 성왕에게 정권을 넘기며 농사의 어려움을 통해 안일을 경계한 『서경』「무일편」에서 유래한 무일도 등이 많이 그려지고 열람되었다. 1402년 태종이 주 문왕, 한 고제, 주 선황후 등과 관련된 본받을 만한 고사를 벽화로 그리게 한 일이나, 1441년 세종이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적을 채집해 그림으로 그린 책을 편찬하게 한 일들이 소개된다. 그밖에 효행도나, 공자의 일생을 그린 공자성적도는 왕세자의 교육용으로 선호된 그림들이다.

6. 왕이 취미로 직접 그리거나 감상했던 그림 - 왕과 왕족의 그림

조선시대 왕들은 늘 신하들로부터 완물상지(玩物喪志, 하찮은 것 혹은 외물에 마음을 빼앗겨 큰 뜻을 잃음)를 경계 받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회화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림에 취미나 재능이 있었던 왕들은 화가를 가까이 두고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유독 서화에 재능이 있었던 왕은 세종, 문종, 성종, 인종, 선조, 인조, 숙종, 영조, 정조, 헌종 등이다. 이들은 직접 난초․대나무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감상한 뒤 그림에 어제와 어필을 남겼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전하는 왕의 그림은 드물지만, 문헌을 통해서 그림을 좋아했던 그들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제2부에서 왕과 왕실의 그림에 관한 문헌기록들과, 그림에 남겨진 어제와 어필, 왕이 직접 그린 그림들, 그리고 왕실 사람들의 그림 자취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상세히 전개된다.

7. 궁궐의 안팎을 장식했던 그림들 - 장식병풍과 벽화

의궤도와 기록화가 기록과 보전에 치중했다면, 궁중장식화는 보다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그림이다. 이는 궁궐의 벽과 실내를 꾸미는 심미적 목적과 함께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표상으로서, 또한 궁중 내외에서 교훈을 담아 가르침을 주는 그림으로 폭넓게 제작되었다. 궁궐 장식화는 왕이 공식적 업무를 수행하는 외전, 일상적 공간인 내전, 왕세자가 거처했던 동궁전 등 그 공간의 성격에 따라 내용이 달랐다. 외전을 장식한 대표적 그림은 일월오봉병으로, 왕이 계신 곳에는 어김없이 그 뒤를 장식하는 그림이었으며, 왕의 존재를 암시할 때도 사용되었다. 그밖에 왕후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서도 사용되는 등 일월오봉병은 가장 의례적이고 상징성이 강한 궁궐의 장식화였다. 모란 그림 역시 공식적 성격이 강한 궁중장식화로, 왕실의 혼례나 상례 등 다양한 왕실 행사에 사용되었다. 왕과 왕비의 일상적 공간인 내전에는 십장생도와 요지연도, 곽분양행락도 등이 주로 장식되었고, 동궁전에는 다남과 부귀의 소망을 담은 백자도가 원자의 교육을 목적으로 제작·배치되었으며, 책과 고동기물이 그려진 책가도 역시 왕세자 처소에 설치되어 학구적이고 교육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왕이 사랑했던 그림, 왕과 왕자가 남긴 그림

●왕에게 그림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시서화로 상징되는 사대부의 고상한 문예취미는 조선시대 왕에게 쉽게 용인되지 않았다. 왕의 모든 생활과 행동은 공적인 의미를 지녔기에, 사적인 취미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덕성을 밝히고 정치에 힘쓰는 것이 왕의 본분이었으므로, 왕이 감계적 그림을 가까이 할 경우 신하들은 이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고 그렇지 않은 경우 과감한 조언이나 격한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왕의 수양과 성찰을 돕는 그림, 백성의 생활상과 관련된 주제의 그림, 교육과 관련된 주제의 그림 등이 감계적 그림에 속하여 꾸준히 제작되고 감상되었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왕의 그림 취미는 실로 다양하다.

●『조선왕조실록』과 그림 속 어제(御製)를 통해 살펴본 왕들의 그림취미

세종은 장식화와 의장용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세부 묘사가 격식과 이치에 맞는가를 꼼꼼히 따지는 데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세종 대 그림에 대한 왕의 주문이나 직접 채택한 범본, 그림에 대한 원칙 등은 세종 대 화원들의 근무 기강을 바로잡고 그들의 기량을 높였다. 세종은 또한 난그림과 대나무그림을 즐겨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의 그림 취향은 크게 두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하나는 제화시를 통한 그림 감상이며, 또 하나는 사실성의 추구이다. 종종 자신이 소장한 그림을 대신들에게 보이고 시를 짓게 하였으며 자신도 직접 제화시를 지었다. 궁중에 화공을 불러 화조화를 그리게 했는데, 새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새를 잡아와 관찰한 후 그리도록 하였다 한다. 화원 그림과 수묵화를 선호했던 연산군, 감계화와 기록화에 관심이 많았던 중종, 묵란과 묵죽을 잘 그렸던 선조, 감상화와 채색 그림을 선호했던 인조 등에 대한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다.

회화 관련 업적과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왕은 숙종과 영조, 정조, 헌종이다. 숙종은 즉위 후 어진을 봉안하기 위한 전각을 정비하고, 역대 어진의 복구에 힘쓰는 등 궁중 도화 사업을 장려하고 제도화했다. 또한 궁중의 서화 수장품을 확충하는 등, 왕실회화의 중흥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역대 왕들의 시문을 모아 편찬한 『열성어제』를 통해 숙종의 회화 취향을 엿볼 수 있는데, 여기에 실린 숙종 자신의 회화 관련 시문만 100여 편이 넘어, 화제를 가장 많이 남긴 왕이라는 것뿐 아니라 그의 다양한 회화 취향도 엿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잠직도〉〈진단타려도〉〈제갈후무도〉 등 여러 점의 감계화에 숙종의 어제가 전하고 있으며, 문인화풍의 수묵화인 해원군 이건의 〈연화백로도〉, 오달제의 〈묵매도〉에도 숙종의 어제가 전하여 그 글을 통해 문인화에 대한 숙종의 감상 취향을 살필 수 있다.

영조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며 직접 그린 여러 폭의 그림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만 남아 있는 작품은 없다. 감계화와 초상화에 대한 관심이 컸고, 영조의 지시로 그려진 수많은 기록화가 남아 있으며, 도화서의 강화와 활성화를 통해 영조 연간 화원화가들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조선 문예부흥기의 절정을 이끌었던 정조 역시, 어릴 적부터 문예와 서화에 남다른 소양을 지녔음이 기록으로 전한다. 특히 규장각 자비대령화원제를 운영하면서 각 화원들의 장단점을 일일이 품평할 만큼 세심한 안목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림의 본질이 신운(神韻)의 표현에 있음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초상화에 대한 정조의 취향이 집약된 표현이다. 정조의 제발이 남아 있는 그림으로 〈송시열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와 《만고기관첩》, 김홍도가 그린 《주부자시의도》 등이 있는데, 뒤의 두 그림을 통해서는 정조의 호학(好學) 취향과 김홍도라는 정조시대 뛰어난 화가와의 관계도 엿볼 수 있다. 정조는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림이 여섯 점 남아 있어, 감평뿐 아니라 활발한 작화 활동도 함께 살필 수 있다.

헌종은 “평소에 서화를 사랑하여 고금 명가의 유필을 내부에 모아 두셨다”는 묘지문에서 볼 수 있듯, 20대 초반의 나이에 방대한 분량의 서화를 직접 모아 수장하였다. 창덕궁의 낙선재 주변 전각들을 주요 수장처로 삼았으며, 그중 정조 대에 지어진 ‘승화루’는 헌종 대에 궁중 수장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곳에 소장된 다양한 전적과 서화류가 『승화루서목』에 전한다. 수장품을 내어놓고 화가들과 품평하기를 좋아했다는 헌종의 취향은 정통 문인화론에 근거한 남종화 계열에 가까웠으며, 김정희의 문하인 전기와 허련 등이 직접 만났던 화가들이다. 문예군주로 성장할 열정을 소유하였으나 23세의 나이에 생을 마침으로서 그에게 ‘미완의 문예군주’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남아 있는 왕과 왕자의 그림들

왕의 여가활동에 대해서는 대신들의 견제와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왕의 서화취미는 비공식적이며 은밀한 가운데 행해졌다. 문헌기록에 왕과 관련된 서화 기록은 군왕의 성찰과 소양을 위한 감계화나 기록화에 대한 것이 많지만, 실제로 남아 있는 왕의 그림을 보면 순수한 감상화류가 대부분이며 이는 왕의 회화취미를 보다 실증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사례일 것이다. 현재 전하는 왕의 그림 즉 ‘어화’는, 인종이 그렸다는 〈묵죽도〉의 판각본, 선조의 〈묵란도〉와 〈묵죽도〉, 정조의 〈묵매도〉를 비롯한 수묵화 여섯 점, 그리고 헌종의 〈산수도〉 등이 전부다. 그밖에 왕자의 그림으로 사도세자 장조의 〈견도〉와 영친왕의 《유년시화첩》 등이 전한다.

인종이 세자 시절에 그려 스승 김인후에게 선물했다는 〈묵죽도〉는 이 그림에 대한 김인후의 시가 남아 있으며, 이 시가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의 만남을 상징하는 시로 후대에 전해져 그림의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선조는 사군자를 특히 잘 그려 취미의 단계를 넘어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선조 작품으로 전하는 두 폭이 각각 《열성어필》과 《화원별집》에 전한다. 역대 국왕 가운데 전칭작이 가장 많이 전하는 왕은 정조이다. 정조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화훼와 사군자로 집약되며, ‘홍재’(弘齋)와, ‘만기여가’(萬機餘暇),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등 정조의 인장이 그림에 남아 있다. 고종의 일곱 번째 아들인 영왕 이은의 《유년시화첩》은 그가 일본 유학시절에 그린 간결한 스케치풍의 소묘로, 새․물고기․과일 등 소소한 일상의 사물을 주제로 하였다.


▶ 조선시대 최고급 문화의 보고(寶庫)! 조선 왕실 문화 연구의 집대성,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돌베개의 새로운 시리즈 《왕실문화총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주관하여 2008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조선 왕실 문화의 총체적 연구 성과를 모은 결과물로, 출간된 첫 권을 포함한 1∼3차 연구 결과물이 2012년까지 총9권으로 간행될 예정이다. 연구는 왕실의 미술, 왕실의 일상, 왕실의 행사 세 분야로 진행되었다. 궁중 기록화의 권위자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박정혜 교수가 ‘왕실의 미술’ 분야(공동 연구자 총 4인)를, 왕실 의례와 기록문화의 권위자인 단국대학교 김문식 교수가 ‘왕실의 행사’ 분야(공동 연구자 총 7인)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심재우 교수가 ‘왕실의 일상’ 분야(공동 연구자 총 6인)를 각각 맡아 분야별로 연구와 집필을 책임 진행했다.

《왕실문화총서》의 1∼3차분은 주제별로 각3권씩 출간될 예정이다.
첫 권인 『왕과 국가의 회화』를 시작으로, ‘왕실의 미술’ 분야에서는 궁궐의 각종 장식화와 벽화․왕실의 감상화와 감계화, 그리고 이의 대중적 확산을 다루는 『조선왕실의 장식화와 감상화』와, 궁중회화의 제작자였던 도화서 화원과 도화서 폐지 후 왕실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한국과 중국 궁정회화와의 비교 연구를 다룬 『조선왕실의 화가․한국과 중국의 왕실회화』가 출간될 예정이다.
‘왕실의 일상’ 분야에서는 왕의 사생활과 일상의 하루부터, 왕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권한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국왕의 건강 관리법과 질병 및 죽음까지를 다루는 『조선 국왕의 일상』, 간택과 책봉․권한 행사와 수렴청정․출산과 육아․여가와 취미생활까지 왕비의 생활사를 디테일하게 조명한 『조선 왕비의 일상』, 왕세자의 책봉과 국왕수업․혼인과 결혼생활․정치참여와 대리청정․놀이와 여가생활, 그리고 비운의 삶을 산 왕자들의 이야기 등을 다룬 『조선 왕세자의 일상』 세 권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왕실의 행사’ 분야 연구는 『조선 왕실의 천지제사』, 『조선왕실의 혼례식과 혼례문화』, 『조선왕실의 즉위의례』세 권의 책으로 정리될 예정이다.

궁궐에서 왕가의 인물들이 향유한 왕실문화는 조선시대 최고급 문화가 집약된 보고(寶庫)이다. 전통시대 가장 상위 계층에서 창출한 왕실의 문화는 왕조시대의 산물이라는 시각을 넘어 새롭게 조명하고 계승해야 할 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크다. 최근 조선시대 왕실문화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관심은 놀랄 만큼 증가하였으며, 그에 부응하는 연구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동안 너무 몰랐기에 무관심했고, 다가가기 어렵게만 생각했던 궁궐 안의 다양한 문화 현상들이 이제 하나둘씩 구체화되고 있으며, 그 원형의 복원에도 많은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이에, 그간에 축적된 왕실 관련 연구를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더욱 새로운 분야로 연구 영역을 확대하며, 미공개 자료를 발굴․활용하여 더 폭넓게, 더 깊이, 더 상세하게 왕실의 문화사를 정립해나감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매체들로 재가공․확대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1차적인 취지이다. 나아가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지향점을 왕실문화에서 발견하고, 그 위상을 정립하는 데 기여하는 것 또한 이번 연구와 그 결과물이 갖는 중요한 의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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