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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각집(상)
저자 : 박제가 ㅣ 출판사 : 돌베개 ㅣ 역자 : 정민,이승수,박수밀외

2010.02.22 ㅣ 591p ㅣ ISBN-13 : 9788971993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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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A5(210mm X 148mm, 국판)
제품구성 양장본
이용약관 청약철회
국내도서 > 인문 > 문학 > 한국문학 (작품집)
이 책은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를 제외한 시문집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초정은 18세기 후반 조선 지식사회의 변화를 추동했다. 북학파의 핵심 인물이다. 초정을 포함해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서상수 등은 이른바 '백탑' 주위에 모여 살며 동지적 연대 속에 학술 문예 사상 전반에 걸쳐 새로운 시조를 받아들여, 답보에 놓인 조선 지성계에 신선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초정은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의 규장각 검서관 생활과 네 차례에 걸친 연행 체험을 통해 툭 터진 식견과 국제적 안목을 갖추었다. 특히 연행에서 중국 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나누고 그들의 발달한 문물을 직접 목도하면서, 당시 조선이 북벌의 원수로 지곰ㄱ했던 청나라가 결코 오랑캐가 아닌, 새로운 학문 사조와 서양 과학으로 무장한 문명국임을 똑똑히 자각하였다. 초정은 사상뿐 아니라 시학 방면에서도 구태를 일신하여 혁신적 시풍을 선도했던 당대 일급의 시인이요 이론가였다.
금번 '정유각집'의 완역을 계기로 북학파로 대변되는 연암그룹의 내부 동향과 당대 생동하는 지성사의 흐름을 더욱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삶의 궤적에 따른 인식 변화, 뜻을 같이한 이들 사이에 오간 우정과 교감, 연행이 계기가 된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구체화되는 자아의 각성, 유배지에서 역사와 맞대면하는 뜨거운 격정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의 문학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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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의 핵심, 박제가의 시문전집 최초 완역
최근 한국 고전학계의 중요한 화두는 단연 동아시아적 전망의 수립이다. 민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협소한 시각을 벗고, 중국과 조선과 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유와 그로 인한 세계관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움직임이 자못 활발한데, 이러한 새로운 흐름 속에서 탁월한 안목과 폭넓은 시야로 국제적 감각을 지녔던 박제가는 늘 화제의 중심에 위치해 왔다.
박제가는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의 규장각 검서관 생활과 네 차례에 걸친 연행 체험을 통해 탁 트인 식견과 국제적 안목을 갖추었다. 특히 연행에서 중국 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나누고 그들의 발달한 문물을 직접 목도하면서, 당시 조선이 북벌의 원수로 지목했던 청나라가 결코 오랑캐가 아닌, 새로운 학문 사조와 서양 과학으로 무장한 문명국임을 똑똑히 자각하였다. 당시 조선에 팽배했던 북벌(北伐)의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북학(北學)의 과감한 주장으로 돌아서는 데 있어 그의 저서 『북학의』(北學議)의 영향은 자못 절대적이었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조선과 청(淸)의 학술 및 민간 교류의 한 주역이었다. 적극적으로 청의 인물들과 교유하여 직간접으로 만나 사귄 이가 100명이 넘었고, 한족과 만족(滿族), 문인과 무인, 관료와 처사 및 외국인까지 교유의 폭도 광범위했다. 이러한 그의 교유는 선배인 담헌 홍대용의 수준을 훨씬 넘어, 후배인 김정희(金正喜), 이상적(李尙迪), 김석준(金奭準) 등에게로 이어졌다. 한중 지식인 교류사에서 박제가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박제가에게 외국인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였다. 국내에선 서얼이라 천대받았지만, 외국에선 그의 진가를 알아준 것이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조선 지식사회의 변화를 추동했던 북학파(北學派)의 핵심 인물이다. 박제가를 포함해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서상수 등은 이른바 ‘백탑’(白塔) 주위에 모여 살며 동지적 연대 속에 학술·문예·사상 전반에 걸쳐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여, 답보에 놓인 조선 지성계에 신선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정유각집』 시집 5책에 실려 전하는 1,721수의 시와, 문집 5책 속의 123편의 산문은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초정 박제가의 시문집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1년에 원문을 활자본으로 간행하였고, 이후 1986년 여강출판사에서 『정유각전집』을 상하 2책으로 펴낸 바 있다. 또 1992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일본과 미국 등 해외 도서관에 소장된 초정의 시문집을 엮어 『초정전서』 3책을 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문집은 지금껏 완역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난해한 고사와 용사가 도처에 숨어 있어, 워낙 해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까지 박제가는 『북학의』의 저자로 알려졌을 뿐, 정작 그의 작품 세계 전모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번 『정유각집』의 완역을 계기로 북학파로 대변되는 연암그룹 내부의 동향과 당대 생동하는 지성사의 흐름을 더욱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궤적에 따른 인식 변화, 뜻을 같이한 이들 사이에 오간 우정과 교감, 연행이 계기가 된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구체화되는 자아의 각성, 유배지에서 역사와 맞대면하는 뜨거운 격정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의 문학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정유각집』을 통해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들의 교류사와 한중일 삼국 내에서의 우리 고전의 위상과 의미를 거시적 안목으로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완역이 이루어짐으로써 박제가의 작품 세계 전모가 소개된 만큼, 이를 디딤돌 삼아 그의 학문과 사상 및 문예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새롭게 시작될 것을 기대해 본다.

키 작은 천재 문인, 초정 박제가
-북학파의 선구 초정 박제가의 생애와 당대 문인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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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서얼이었다. 젊은 날의 자서전이라 할 「소전」(小傳)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그의 사람됨은 이러하다. 물소 이마에 칼 같은 눈썹, 초록빛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孤高)한 사람만을 가려 더욱 가까이 지내고, 권세 있는 자를 보면 일부러 더 멀리하였다. 그런 까닭에 세상과 맞는 경우가 드물어 언제나 가난했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고명한 일에만 마음을 두고 세상일에는 무심하였으며, 사물의 명리(名理)를 종합하고 깊고 아득한 세계에 침잠하였다. 백세 이전의 사람들과 흉금을 트고, 그 뜻은 만 리를 넘어 날아다녔다.”(이 책 하권 「小傳」)
한마디로 가난하지만 고고한 선비임을 자처한 것이다. 스스로 묘사한 자신의 외모는 날카로운 성미와 예리한 안목을 지닌 비범함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권세 있는 사람을 멀리하고 고고한 이와 가까이 했다는 언급에서 불우한 처지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강고한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굴원의 『초사』(楚辭)를 아껴 호를 초정(楚亭)이라 했으니,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박제가가 교유했던 중국의 문인 우촌(雨村) 이조원(李調元)은 그를 평하여, “그는 조선에서 문장이 매우 뛰어난 자이다. 그의 키는 작달막한데 굳세고 날카롭다. 재주와 정감이 매우 풍부하며, 위로 『이소』와 『문선』을 탐구하고, 곁가지로 백가(百家)의 정수를 모두 모았다. 그의 문장은 찬란한 별빛과 같고 조개가 뿜어내는 신기루 같으며 용궁의 물과 같다”라고 했다(이 책 하권 「서문 2」). 한마디로 박제가는 예리한 성품에 글 솜씨가 뛰어난 키 작은 천재라는 평가다.
박제가가 가장 친하게 교유했던 이는 단연 형암(炯菴, 다른 호는 靑莊館) 이덕무(李德懋)였다. 서로 나눈 많은 편지글과 박제가의 문집에 등장하는 30여 수가 넘는 시들이 구구절절 논거를 들지 않아도 이들의 특별한 관계를 잘 말해 준다. 이덕무는 박제가에 대해 “젊은데도 불구하고 어른처럼 점잖습니다. 생각은 건전하고 심지가 굳으며 말은 명료합니다. 질박할 뿐 아니라 슬기가 뛰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수재입니다”라고 평가했다(『국역 청장관전서』, 간본 형암유고 7권, 「與朴在先書」). 박제가의 회인시(懷人詩)에서도 형암 이덕무는 단연 맨 앞이었으며, 서로의 허물을 스스럼없이 말해 줄 만큼 둘은 친밀했다. 이 두 사람의 끈끈함은 일차적으로 둘의 삶의 행적이 비슷한 데서 오는 동질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같은 서얼 출신인 데다 서로 아주 가난했으며 또 동시에 검서관이 되었다. 박제가는 이덕무보다 아홉 살 어렸지만, 이덕무를 스승이라 부르겠다고 할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박제가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수제자였으며, 연암 역시 박제가의 재주를 인정하고 그를 매우 아꼈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기록한 『과정록』(過庭錄,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베개, 1998)에 따르면, 이덕무와 유득공, 박제가는 항상 연암을 따라 노닐며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제자들이 변증(辨證)하면 스승인 연암도 삼가 예를 갖추고 들었으며, 매번 모여서 담론을 나눌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지새웠다. 세상 사람들이 연암을 비방하고 배척해도 이들 세 사람은 스승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시들지 않아 여가가 날 때마다 찾아와 머물렀다. 박제가와 이덕무는 특히 연암의 수제자였고, 연암은 박제가의 『북학의』에 대해 자신의 『열하일기』와 더불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하다고 하며 3일 동안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고 칭찬하기도 했다(『북학의』,「서문 2」).
박제가는 규장각 검서관으로서, 조선의 르네상스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학술군주 정조(正祖)의 문화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했다. 연암이 박제가의 스승이었다면, 국왕 정조 역시 박제가에게는 큰 스승이었다. 정조는 박제가를 알아주고 키워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검서관 시절 이후로 시문 곳곳에 펼쳐지는 정조에 대한 감격과 눈물은 일견 과도해 보이기도 한다. 1799년 정조가 죽고 1801년(순조 1년)에 박제가는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귀양지에서 쓴 박제가의 글에는 끊임없이 정조에 대한 그리움과 충성이 표출된다. 1805년(순조 5년)에 박제가가 죽고 나서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남겼는데 두 번째 수는 이렇다.

“그 누가 이 사람 미칠 수 있겠는가 / 신하를 알아줌 임금만한 이 없어라 / 건릉에 덮인 풀도 푸르거니 / 그대의 죽음이 늦었다고 하리로다.”

건릉은 바로 정조의 능이다. 박제가와 정조의 특별한 관계를 말하고 있다.
박제가는 지극히 이상주의적인 부국강병을 부르짖었던 개혁가였고, 예리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이었다. 만약 박제가에게 『북학의』의 정신을 실현할 만한 권세와 힘이 있었다면 조선의 문화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비록 그는 현실에선 서얼 출신의 외로운 시인이고, 충혈된 눈을 비벼가며 오자(誤字)를 찾고 교정하던 검서관에 불과했지만, 원대한 부국강병의 꿈을 지닌 문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전(自傳)의 말미에서 “아득한 세상 하늘 끝에 가거나 천만년 세월이 흘러가도/사람마다 나를 만나 보게 되리라”라고 하였는데, 결국 이 소망이 그의 글을 통해 실현된 셈이다.

이 책의 특징
첫째, 아세아문화사본 『초정전서』에 수록된 시문집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하되, 필사본을 포함한 여타 판본을 대비하여 오자를 바로잡았고, 그중 중요한 내용은 번역문 하단에 주석으로 밝혀 두었다.
둘째, 아세아문화사본 『초정전서』에는 없지만, 여타 다른 문집에 수록된 작품도 해당 시기에 맞게 첨부함으로써, 명실공히 박제가의 시문집을 총망라하고자 했다. 특히 북한 김일성대학 소장본 『초비당외집』에 수록된 「묘향산 소기」의 원문과 번역문을 포함시켜, 그간 이 글의 부록격인 「검무기」만 수록되어 있던 결락 상태를 보완하였다.
셋째, ‘해제’와 ‘박제가 연보’를 통해 박제가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으며, 현재까지 이루어진 초정 박제가 시문집의 기초적인 판본 정리 및 간행 작업을 도표화하여 정리하였다.
넷째, 각권의 말미에 작품의 원제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고 해당 위치를 표기함으로써, 원제만으로도 작품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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